“지금 보시는 건 일본 규슈 여행에 관한 책입니다. 규슈 지방은 라멘으로 유명한 곳이죠.”

언뜻 평범해 보이는 안경을 쓰고 책상에 놓인 여행책이 무엇인지 묻자 안경테에서 이 같은 대답이 누군가 귓속말하듯 나왔다. 뒤이어 “유명한 식당을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묻자 유명한 라멘 식당 정보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대답을 귀로만 들은 건 아니다. 렌즈에는 방금 들은 대답이 말풍선 모양 자막으로 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열린 개발자대회(I/O) 현장에서 체험한 차세대 스마트안경은 무려 10년이 걸린 구글의 ‘와신상담’을 증명하는 듯했다.
"초능력 얻을 것"…구글, 신형 AI 기기 '승부수'
구글이 삼성전자, 젠틀몬스터와 손잡고 스마트안경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2013년 선보인 구글 글라스를 2년 만인 2015년 자진 철수한 후 10년 만이다. 검색에 인공지능(AI)을 전면 도입하고 각 기능에 특화된 모델을 대거 출시하는 등 스마트안경의 토대가 되는 AI도 대폭 강화했다.

◇ 한국 기업과 협업 강화한 구글

스마트안경 시제품을 착용한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스마트안경 시제품을 착용한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구글의 차세대 스마트안경 개발은 한국 기업과의 협업이 주축이다. 하드웨어는 구글과 ‘확장현실(XR)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전자가 맡기로 했다. 올해 말 출시하기로 예정된 XR 헤드셋에 이어 스마트안경까지 협력 관계를 대폭 확대했다. 디자인은 한국 아이웨어(안경·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미국 브랜드 와비파커가 맡는다. 샤람 이자디 구글 XR부문 부사장은 “안경은 하루 종일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치가 발휘된다”며 “스마트안경을 쓰면 초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새 스마트안경은 멀티모달 AI 모델 ‘제미나이 라이브’를 기반으로 구동된다. 그동안 제미나이 라이브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눈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스마트안경의 오른쪽 테두리 위쪽에 장착된 초소형 카메라를 활용해 사용자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맞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삼성전자가 제조하는 스마트안경 렌즈에는 가로세로 약 1㎝ 크기의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내장돼 있다. 이 디스플레이로 실시간 번역, 길 안내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 검색에도 AI 적극 도입

구글이 2015년 스마트 글라스 시장에서 철수하자 메타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미국 안경 기업 에실로룩소티카(레이밴)와 손잡은 메타는 2023년 스마트안경 ‘메타 레이밴’을 내놓으며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안경 시장에서 60% 이상 점유율을 차지했다.

구글은 핵심 사업인 검색에도 AI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의 AI 검색 기능인 ‘AI 오버뷰(개요)’가 검색 결과를 요약 및 정리해주는 데 그쳤다면 이날 미국에 먼저 출시된 ‘AI 모드’는 AI가 사용자의 질문 의도를 파악해 답변을 제공한다. 특히 에이전트(비서) 기능이 강화돼 사용자 선호도에 부합하는 물건을 찾아 스스로 장바구니에 넣고 명령하면 알아서 구매까지 해주는 등 쇼핑 기능을 강화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AI 모드는 구글이 만든 역대 가장 강력한 AI 검색 경험이 될 것”이라며 “검색을 전면 재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