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음악이 만든 몽환적 체험…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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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4~15일 성남아트센터 기획공연 '꿈의 극장'지난 14일 저녁,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공연 시작 전부터 뿌연 연기가 객석을 휘감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심장 박동과 같은 진동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암전되지 않은 극장 뒷편에서 한 남자 무용수가 걸어나왔다. 무언가에 홀리듯 두리번대던 그가 무대에 오르자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이 비로소 시작됐다.
13명의 춤꾼과 3인의 연주자...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다
진동으로 떨리던 온 몸, 자발적 전율로 휘감겨
점점 빨라지는 비트와 큰 소리 때문에 뱃속이 소란스레 울렸다. 과장된 음향 효과로 기도와 식도까지 진동으로 떨리고 있다는 걸 인지한 건 처음이었다. 극장 측은 입장 직전, 음향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귀마개를 나눠줬다. 그럼에도 연출가의 의도를 존중하기 위해 귀마개를 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
13명의 무용수들은 강렬한 조명 아래 춤을 추며 무의식의 세계를 불러 세웠다. 사람이 꿈을 꾼다는 '렘수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을 이어붙인 듯한 구성이었다. 무용수들은 한데 모여 절도있게 흐느적거리다, 어떤 순간에는 폭발하는 에너지에 휩싸여 격렬한 몸짓을 분출했다.
공연이 절반쯤 지날때 무대에는 빨강 수트를 입은 3인조 밴드가 등장해 라이브로 몽환적인 음악을 연주했다. 이때까지 온 몸의 공간을 울리던 강한 비트, 귓전을 때리는 큰 소리와 대비를 이루는 분위기였다. 자유롭고 폭발적이던 무용수들의 춤도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한 움직임으로 전환됐다.
약 5분간 관객들은 전원 기립해 무아지경에 빠져 몸을 흔들었다.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그녀가 "모두 다시 앉아주세요"라고 말하자 머쓱해진 이들이 주섬주섬 착석했다. 환상의 꿈과 고통스런 현실의 괴리가 무자비하게 이어졌다. 무용수들은 곧 억압에 짓눌린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무대를 누볐다.
무용을 접할 때마다 같은 인간으로서 내 몸은 왜 이렇게 저급한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동작을 보며 예술이란 대관절 무엇인지 고민하던 일이 잦았다. 하지만 호페쉬 쉑터 무용단의 춤꾼들은 이런 생각에서 완벽히 필자를 탈주시켰다. 절도있고 아름다운데 나조차도 해볼만한, 참여하고 싶은 춤이었기 때문이다.
이해원 기자
※호페쉬 쉑터는 누구?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이자 댄서, 작곡가다. 20여 년간 유럽에서 줄곧 최정상 안무가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18년 무용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OBE)을 받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