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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까지 튀는 파도...바가지로 물 퍼 올린 스태프 '손맛'이 살렸다

[arte] 허세민의 인터미션

연극 의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 인터뷰
곰치네 비극 상징하는 폭풍우에 물 5톤 사용
"쓰나미 느낌 내기 위해 사람이 직접 물 끼얹어"
"과거 경험에서 착안…후배들, 자연 접해야"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배우가 아닌 무대다. 사람의 첫인상이 수초 안에 결정된다고 하듯, 무대를 보면 그날 공연의 분위기나 흐름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곰치네 부부 위로 폭풍우가 내리치는 연극 <만선>의 하이라이트 장면. 이 장면에 물 5톤이 사용됐다. 쓰나미를 구현할 때는 기계가 아닌 스태프 두 명이 동원된다./사진=국립극단
지난 6일 개막한 국립극단 연극 <만선>의 무대는 주인공 곰치 가족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어두운 조명 아래 기울어진 나무 바닥과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양철집은 무대의 스산한 공기를 객석까지 몰고 온다. 만선의 이태섭 무대디자이너(71)는 2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기자와 만나 "과거 한국 연극 작품들은 사실적 묘사가 일반적이었지만 만선은 극적 긴장감을 강화하는 표현주의적 연출을 더했다"며 "젊은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가파른 경사의 무대를 만들고 비바람의 세기도 키웠다"고 말했다.
연극 &lt;만선&gt;의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2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만선은 1964년 고(故) 천승세 극작가의 동명 희곡이 원작인 작품이다. 같은 해 초연 이후 국립극단이 창단 70주년을 맞아 윤미현 윤색, 심재찬 연출로 2021년 무대에 다시 올렸다. 무대는 이태섭 디자이너가 맡았다. 그는 1990년 국립극장 연극 <오이디푸스 렉스>로 데뷔해 <리어왕>, <햄릿>, <맥베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 연극을 중심으로 200여 편의 무대미술을 책임졌다. 이해랑연극상(2021년),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2005·2018년) 등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서 만선(滿船)을 꿈꾸는 곰치네 가족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거센 풍랑이 휘몰아치는 에필로그에서 파국은 절정으로 치닫는데, 이때 사용되는 물은 5톤에 달한다. 이 디자이너는 "고집 센 곰치가 격변하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모습을 쓰나미를 통해 비유적이면서도 과장되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무대 뒤 스태프가 직접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무대 위와 옆에서 내리치는 비바람을 제외하고, 곰치네 부부를 집어삼키는 파도는 무대 뒤편의 스태프 두 명이 구현한다. 이들은 무대 조명이 꺼질 때까지 음악에 맞춰 20~30번가량 바가지로 물을 퍼 올린다. 파도 모양은 힘의 세기와 기술에 따라 물줄기가 보이는 일자로 뻗거나 사방으로 퍼지는 등 다양하게 변한다. 기계를 이용해보기도 했지만, 스태프들의 '손맛'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기술팀에 쓰나미 같은 느낌을 살려달라고 요청했어요. 비도 단순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처럼 몰아치고, 때로는 안개비처럼 흩뿌려지도록 했죠. 여러 요소를 섞어 에필로그 장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최근 공연계에서는 물을 활용한 작품이 늘고 있지만, 만선처럼 객석까지 물이 튈 정도로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연극 &lt;만선&gt;의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2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곰치네 집 지붕이 비바람에 들썩이는 장면도 수동으로 이뤄진다.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스태프 한 명이 곰치네 집 안에 숨어 있다가 막대기 끝으로 지붕을 부서질 듯 흔드는 것이다. 파도를 일으키는 스태프도, 지붕을 뒤흔드는 스태프도 연극이 끝나면 온몸이 땀과 물로 흠뻑 젖는다고 한다.

내리치는 비와 파도는 약 15도 경사의 무대를 따라 흘러내린다. 기울어진 무대가 가세가 기운 곰치네를 형상화하는 동시에 배수 기능도 하는 셈이다.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지만 바다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무대의 특징이다. 관객은 곰치가 만선의 꿈을 품고 수평선 너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야 한다. 그는 "연극은 관객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관객의 상상력을 넓게 키워주는 시적인 무대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무대 디자이너는 작품을 의뢰받은 뒤 원작을 읽고 연출가와 함께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논의한다. 만선의 기울어진 양철집처럼 원작에는 없지만 디자이너의 판단에 따라 무대를 설계하기도 한다. "만선의 배경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적 풍경과 유사하기 때문에 익숙했어요. 얼마나 처절하게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는지 알았기 때문에 디자인할 때 덕을 봤어요. 디자인할 때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물론 도시가 배경인 작품도 많지만, 자연을 접하고 느껴야 해요. 도시에서 자라난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자연을 관찰하면서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연극 &lt;만선&gt;의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3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이솔 기자
35년 경력의 베테랑 이 디자이너는 무대 디자인을 할 때 배우의 동선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미술이라고 하면 미술적인 요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무대는 배우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마루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자인 할 때부터 배우가 어디서 나와 어디로 들어가는지, 어떻게 앉아 있고 서 있는지 등을 감안한다"며 "어떻게 동시대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강화할 수 있을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무대 디자인의 매력은 뭘까.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대가 순식간에 변하잖아요. 사람들이 무대를 채우며 시간과 공간도 변하죠. 의상이나 조명이 합쳐지면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감동적이에요. 무대 미술만한 예술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 디자이너가 웃으며 답했다.

그는 무대 디자이너가 시간과 돈에 밝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듯한 준비 시간과 예산 안에서 무대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은 혼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에요. 정확한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공연을 할 수 없어요. 나 혼자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연출이 만들어 놓은 선 안에서 조율해야 합니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중간에 그만 분들도 많은데, 경험의 축적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시간과 돈의 제약이 없다면 어떤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팬을 통해 인공적인 바람을 만들어 내면 큰 소음이 발생한다"며 "만약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무대 위에 자연스러운 공기가 흐르고, 머릿결이 날리고, 풀잎이 흔들리고, 나뭇잎이 구르기도 하고, 물결이 일렁거리는 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정부 지원도 요청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극단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며 "정부 지원을 받아 무대 미술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겨야 젊은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극장에서는 리허설 시간이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며 "만선을 포함해 작품들이 무대 위에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은 뮤지컬, 연극 등 공연 중간의 휴식 시간을 의미합니다. 공연이 잠시 멈춘 순간, 객석에선 보이지 않는 무대 뒤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글=허세민 기자/사진=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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