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학의 대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사진)가 ‘금융의 인간화’라는 새 화두를 제시했다. 5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12년 미국경제학회(American Economics Association) 연례총회 개막 연설을 통해서다.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의 공동 개발자이기도 한 실러 교수는 이날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라는 제목의 개막 연설에서 “반(反)월스트리트 시위는 금융산업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촉발됐다”며 “이는 금융의 순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금융 역시 지속적으로 혁신을 해야 하며 그 방향은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금융의 인간화(humanization)’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러 교수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도 보험 등 금융시스템이 의학 발전과 새로운 의학기술의 적용을 촉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으로 35만명이 사망했는데 비슷한 강도의 1994년 캘리포니아 지진 때는 사망자가 33명에 불과했다”며 “아이티에는 전문적으로 지진 피해를 줄일 인센티브가 있는 보험산업이 없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러 교수는 좋은 사회를 위한 금융 혁신의 예로 ‘지속적인 워크아웃 모기지’를 제시했다. 집값이 떨어지거나 실업률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워크아웃(채무 재조정)을 시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를 개발하자는 것.
그는 “30년 장기 고정금리 대출도 대공황 당시 주택시장이 침체되자 루스벨트 행정부가 고안한 것”이라며 “주택 소유주들이 위기를 헤쳐나가게 하기 위해 이런 금융상품을 다시 내놓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혁신이 바로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금융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경제학회는 이날 나흘 일정으로 연례총회를 시작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올 한 해 세계 경제와 경제학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시카고=유창재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