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믿는다. 지질학자 이상묵 교수(50·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사진)도 그랬다. 열심히 공부하면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2006년 여름 제자들을 데리고 미국 서부로 떠난 지질탐사 여행에서 차가 전복됐다. 목 밑으로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사지마비의 장애인이 됐다. 절망 속에서 외쳤다. “이거 정말 내 각본 맞아?”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교수가 지난 30일(현지시간)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뉴욕 유엔본부 앞에 나타났다. 지난 6월27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출발해 40일간의 미국 자동차 횡단 여행에 나선 지 33일 만이다. 그는 6년 전과는 다른 인생의 새 각본을 쓰고 있었다.

“사고 직후 죽음을 경험하는 꿈을 꿨어요. 그러고 나니 ‘열심히 공부한다고 정말 위대한 과학자가 될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까지 나는 내 공부만 하고 살았어요. 감사는 뒤로 미뤄놨죠.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한 게 아닌가….’ 나중에 성공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만약 그때 죽었다면 자기 혼자 공부하다가 죽은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됐겠구나’ 싶더군요.”

그때부터 이 교수의 인생 철학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한다(Now or never)’가 됐다. 그래서 올여름에 중요한 연구과제 발표도 예정돼 있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미국 자동차 횡단 여행에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6년 전 사고 당시 지질탐사 여행을 함께 갔다가 운명을 달리한 제자들을 추모하고 싶었습니다. 저를 죽음에서 살려준 LA특수병원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중증 장애인들도 낚시나 사냥을 즐길 수 있는 미국의 장애인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고,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을 찾아가 협력 방안도 찾아보고 싶었죠.”

이 교수는 사고 이후 한국의 장애인 교육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미국의 장애인 지원 제도가 잘 돼 있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기독교적 정신도 밑바탕이 됐지만 미국은 늘 전쟁을 하는 나라라는 특성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상이용사를 영웅시하고 이들에게 최고의 복지혜택을 제공하다 보니 사회 전반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퍼졌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와 달리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더 나아가 사회가 통합되는 과정을 걷고 있다”며 “후발국가들에 미국보다 한국이 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LA에서 시작한 이번 여정은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시카고, 피츠버그, 워싱턴DC 등을 거쳐 뉴욕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행선지는 보스턴이다. 이 교수에게 다음 도전 과제를 물었다.

“탐사를 하다 보면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끝내고 보면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되죠. 이번 여정도 끝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제자들과 와이오밍주 옐로스톤으로 지질 공부를 떠나볼까 합니다. 2년 후에는 인도양에 직접 배를 타고 탐사를 나가는 것도 계획 중입니다.”

그의 각본은 계속 새로 쓰이고 있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