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권에 불어닥친 탈(脫)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니셔티브 바람이 거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넷제로자산운용 이니셔티브(NZAM)를 탈퇴한 데 이어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 주요 금융사도 연이어 넷제로은행연합(NZBA)을 떠났기 때문이다.
월가 금융사들의 ESG 이니셔티브 탈퇴는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를 시작으로 웰스파고,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JP모건이 차례로 NZBA를 떠났다. 기후변화 대응 관련 투자자 연합체인 클라이밋 액션 100+에서도 JP모건자산운용, 스테이트스트리트,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이 탈퇴를 선언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ESG에 대한 반발이 자리한다. 지난해 11월 텍사스주 등 11개 공화당 주정부는 블랙록과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넷제로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석탄 생산을 제한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반ESG 정서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금융권의 결단을 재촉했다.
그러나 오히려 ESG 투자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블랙록의 필립 힐데브란트 부회장은 “이니셔티브 탈퇴가 고객을 위한 상품과 솔루션 개발이나 포트폴리오 운용 방식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더 나아가 블랙록은 1조 달러 이상의 지속가능 전환 투자를 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후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ESG 투자가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국 성공회 연금위원회의 애덤 매튜스 책임투자 최고책임자는 “몇 년 전에는 공통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기후 리스크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 차원의 기후 동맹 형성이 매우 유용했다”면서도 “이제는 모호하고 과장된 약속에서 벗어나 자본 배분과 투자 결정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ESG라는 레이블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투자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뱅가드는 지난해 모든 환경·사회 관련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는 해당 제안이 “기업에 과도한 규제이거나 불필요하고 중요한 재무적 위험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ESG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실질적 기업가치와 투자수익률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었다.
ESG 투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니셔티브라는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 개별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ESG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투자의 효율성과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옥스퍼드 지속가능금융그룹 벤 칼더콧 디렉터는 “포트폴리오의 탄소중립 약속보다 실제 경제에서의 배출량 감축이 중요하다”며 이번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SG 투자의 미래는 형식이 아닌 내실에 달려 있다. ESG라는 단어나 이니셔티브 참여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기업의 ESG 성과와 이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다. 이러한 본질에 충실할 때, ESG 투자는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사회적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SG라는 형식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ESG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