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동박 3사의 솟아날 구멍은...전기차 대신 AI 반도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배터리 산업의 성장세도 꺾이면서 주요 소재를 공급하던 국내 동박기업들의 업황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이에 동박기업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 나섰다.

11일 동박업계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올해 4분기부터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들어가는 초극저조도(HLVP) 동박을 공급할 전망이다. 최근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북 익산공장에 연산 1800t 규모 AI 가속기용 HLVP 동박 양산 체제도 구축했다.

HVLP 동박은 전자 제품의 신호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표면 거칠기(조도)를 0.6㎛(1㎛=100만분의1m) 이하로 낮춘 제품이다. 신호 손실을 낮출 수 있어 AI 가속기, 5G 통신장비 등에 활용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스 측은 “배터리와 같은 전방 산업 시황이 여전히 어렵지만 AI 가속기용 동박 등 신규 공급으로 올해 제품 판매량이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의 AI 가속기용 HLVP 동박 납품 물량도 올해부터 많아질 전망이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블랙웰’에 들어가는 HLVP 동박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인텔에서도 차세대 AI 가속기용 제품 승인을 얻었고, AMD에서는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솔루스첨단소재의 동박 사업 매출이 내년 2900억원으로 작년(1963억원) 대비 47%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유리기판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C는 2억4000만 달러(약 34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유리기판을 연간 1만2000㎡ 규모로 만들 수 있는 제1공장을 지난해 완공했다.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전망이다.

유리기판은 AI 가속기 수요가 커지면서 기대를 모으는 부품이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열이 적게 나고 소비 전력도 30% 이상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와 인텔 등이 SKC의 유리기판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납품 여부가 확정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동박기업들이 이처럼 잇따라 AI 가속기 시장을 두드리는 건 전기차 배터리에 납품하는 물량만으로는 미래가 밝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배터리 회사들의 재고 물량 조정으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영업손실 644억원을 내고 적자 전환했다. 솔루스첨단소재도 544억원의 영업손실을, SKC도 276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AI 산업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적은 수의 반도체로 뛰어난 성능을 내는 AI 모델을 개발하긴 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계속되면서 장기적으로 AI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