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글로벌 오디오 및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분야 최강자 중 하나인 하만을 손에 넣은 건 2017년이다. 인수금액은 8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조원). 당시 국내 기업이 품은 해외 기업 중 최대어였다.

"인수 안 했으면 어쩔 뻔"…삼성 '캐시카우'된 하만
하지만 ‘하만이 삼성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적이 꺾인 데다 삼성전자와 이렇다 할 시너지도 못 내자 투자업계 일각에선 “패착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랬던 하만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 수익성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손발을 맞춘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하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으로, 2017년 인수 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1년 5591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22년 8800억원, 2023년 1조1737억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TV·가전 부문의 두 배에 달하는 4000억원을 벌어들였다.

하만 인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기이사에 오른 뒤 진행한 첫 초대형 인수합병(M&A)이다. 1956년 미국에서 설립된 하만은 소비자용 스피커와 차량용 오디오를 파는 ‘사운드 명가’였으나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콕핏, 인포테인먼트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만의 상승세는 인수 직후 주춤했던 양대 사업부가 동시에 상승 곡선을 그린 덕분이다. 소비자용 오디오 부문에선 미국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필수품’이 된 JBL이 일등공신이다. 하만은 JBL뿐 아니라 렉시콘, 마크레빈슨 등 15개 오디오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JBL에 젊은 이미지를 불어넣은 전략이 적중한 것”이라며 “세계적인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DJ 마틴 게릭스를 JBL 앰배서더로 영입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전장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삼성은 하만 인수 후 성장성이 떨어지는 자회사를 정리하는 대신 전장사업에 힘을 줬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첨단 기술 관련 협업도 강화했다. 2018년 디지털 콕핏을 시작으로 헤드업디스플레이(HUD)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을 BMW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납품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면서도 ‘전공’인 카 오디오 경쟁력은 한 단계 끌어올렸다. 현대자동차, 아우디, 폭스바겐, BMW, 도요타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업계에선 전장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하만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그랜드뷰리서치는 지난해 2626억달러(약 372조원)이던 글로벌 전장 시장 규모가 2030년 4681억달러(약 664조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박의명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