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나 비행기, 배 등 이동 수단은 우리 인류의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배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가운데 한 회사의 TV 광고에 나오는 '친환경 솔루션을 띄운다'는 문구에 대해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저 회사에서 띄운다는 친환경 솔루션은 그린 택소노미에 해당할까?’
[한경ESG]-ESG 키워드 포커스 ① 택소노미
친환경 선박의 모습 /사진 딜로이트 제공
2019년 유럽연합(EU) 택소노미(taxonomy)가 발표되고, 2021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녹색금융에 관한 관심과 함께 택소노미에 이목이 집중됐다. 2022년 3월에는 가스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가 그린 택소노미에 새롭게 편입되면서 원자력발전에 관한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2025년 들어 EU 역내에 자회사를 보유한 기업의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에 따른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되면서 택소노미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EU 택소노미의 목적 및 내용
택소노미는 사전적으로 ‘분류체계’로 풀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EU 택소노미는 ‘기업과 투자자가 지속가능한 투자 결정을 내리기 위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분류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EU 택소노미는 온실가스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2030년까지 55% 이상 감축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제정됐다. 나아가 EU 택소노미는 2050년까지 발생하는 불가피한 기후변화에 EU 사회가 완전히 적응하고, EU 내 자연 자본을 지키고 보존하고 강화하는 동시에 환경 관련 위험 및 영향으로부터 EU 시민의 건강과 삶을 보호하는 목적을 지녔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지역이나 사람도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EU 택소노미는 EU의 기후 및 환경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전환을 지향하지만, 투자자에게 EU 택소노미 적합 활동에 투자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EU 택소노미에서는 이와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린 택소노미에 적합한 활동으로 1) 기후변화 완화, 2) 기후변화 적응, 3) 물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활용 및 보존, 4) 순환경제로의 전환, 5) 공해 방지 및 통제, 6)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존 및 회복의 6가지 환경목표 중 한 가지 이상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EU 택소노미에 적합한 활동은 위의 6가지 환경목표 중 한 가지 이상에 상당히 기여하는 동시에 나머지 환경목표에 대해서는 심각한 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이는 DNSH(Do Not Significantly Harm) 조건에 해당한다.
예컨대 태양발전을 위해 숲속에 태양발전판을 설치한다면 이는 기후변화 완화 행동으로 6가지 환경목표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활동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숲속에 태양발전판을 설치하기 위해 산림자원을 훼손한다면 이는 환경목표 중 6번째인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존 및 회복이라는 환경목표에 심각한 해를 가할 수 있다. 숲속에 태양발전판을 설치하는 행위는 DNSH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EU 택소노미에 적합한 활동이 되지 못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조건으로 EU 택소노미에서 최소 안전장치 요건을 제시한다. 이는 택소노미 활동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강제 노동행위 금지, 조합 결성 자유 보장, 노동자의 조직화에 관한 권리 보장, 단체교섭 권리 보장, 동일 노동에 대한 성별 간 보상 차별 금지, 채용 등과 기회 및 처우의 공정성 보장, 아동노동 금지 등 내용을 담고 있다.
EU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에서는 기업의 수익 활동, 지출 활동, 투자 활동을 EU 택소노미에 적합한(aligned) 활동, 택소노미에 적격한(eligible) 활동, EU 택소노미에 비적합(non-aligned) 활동으로 구분해 각각 금액을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EU 택소노미에 적합한 활동은 택소노미 활동이 기술 심사 기준, DNSH 조건과 최소 안전장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택소노미에 적격한 활동은 택소노미 활동이 분류체계에는 해당하지만, 기술 심사 기준, DNSH 요건이나 최소 안전장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국내 기업의 대응 방안은
EU 역내에 소재한 비상장 대기업은 2025년을 대상으로 2026년부터 ESRS에 따른 지속가능성 공시가 의무화된다. 이는 국내 기업 대부분의 EU 역내 종속 회사에도 해당한다. 앞서 말했듯이 ESRS에서는 매출액, 영업비용, 자본적 지출액을 택소노미 적합 활동, 적격 활동, 비적합 활동으로 구분해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EU에 소재한 국내 기업의 자회사들은 EU 택소노미와 관련한 공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검증할 수 있을까? 예컨대 TV 광고에 나오던 조선 회사의 ‘친환경 솔루션’을 EU 택소노미에서는 어떻게 정의할까? 이는 ‘EU Taxonomy Compass’를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회사의 친환경 솔루션은 ‘저탄소 기술을 사용한 운송수단 제조’에 해당한다. 선박 제조와 관련한 기술 심사 기준에서는 국제해사기구(IMO) 에너지 효율 설계지수(EEDI)를 언급하고 있다. 이 기준에서는 제조 선박의 EEDI에 따라 계산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기준을 제시한다. 연간 매출액 중 EU 택소노미에 적합한 매출액 비중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각 선박의 설계 단계부터 EEDI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산정하고, 외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기술 심사 기준 뿐 아니라 DNSH 요건, 최소 안전장치 준수 여부를 확인할 때 필요하기도 하다.
국내 기업이 EU 택소노미 공시 요구사항에 대응할 때는 3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사전 준비 작업의 필요성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활동의 성격에 따라 해당 활동의 기술 심사 기준, DNSH 조건의 충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측정이나 외부 인증이 요구되는 경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관련 기술개발이나 친환경 제품 생산에 착수하는 시점에 관련 요건을 사전에 파악하고 조건 충족을 위한 사전 준비가 요구된다. 사전에 기술 심사 기준 등의 조건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친환경 제품 등을 설계·판매할 경우 실제로는 택소노미에서 요구하는 환경목표를 충족하는 활동임에도 외부 인증 등 절차적 하자로 인해 택소노미의 적합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
둘째, 관련 활동 및 재무 데이터를 별도로 생성·관리해야 한다. EU 택소노미에서는 매출액뿐 아니라 영업비용, 회계상 자본적 지출액을 택소노미에 적합한 활동과 적격한 활동을 재무적 수치로 표시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에 대응하려면 생산·판매·개발 인력의 택소노미 활동 투입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건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각종 지출을 처리하고 제품을 판매할 때 발생 시점에서 발생 금액과 택소노미 활동 부합성을 판단하고 관리해야 한다.
셋째, 결산 및 관리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결국 택소노미 조건의 사전 파악과 택소노미 활동의 구분 관리는 시스템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매출이나 비용, 자본적 지출의 발생액에서 택소노미 활동을 분류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의 구조를 개편·보완해야 한다. 각종 거래나 활동 기록 시점에 택소노미 활동 여부를 시스템적으로 식별하고 이를 누적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하고, 이러한 기록이 투명해야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 주목
K-택소노미, 즉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녹색 경제활동을 정의하는 자발적 지침서로 정의된다. 우리나라는 EU 택소노미를 벤치마킹해 약 2년에 걸쳐 산업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 K-택소노미를 마련했다.
K-택소노미의 내용은 EU 택소노미와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1) 온실가스 감축, 2) 기후변화 적응, 3)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4) 순환경제로의 전환, 5)오염 방지 및 관리, 6)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6대 환경목표가 EU 택소노미에서 논하는 6가지 환경목표와 흡사하다.
또 K-택소노미에서도 환경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DNSH)과 함께 인권·노동·안전·반부패·문화재 파괴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고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준수해야 한다(Minimum Safeguards, MS)는 조건을 적합성 판단 조건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EU 택소노미와 구조적 측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K-택소노미는 녹색채권 발행 및 녹색여신 제공의 판단 기준을 위해 마련됐다.
<국내 녹색채권 거래 규모> 그래프는 K-택소노미상 녹색사업에 투자하는 목적으로 발행하는 녹색채권의 연도별 거래량 및 종목 수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 따르면, 2021년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녹색채권 발행 실적이 매년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EU 택소노미는 ESRS를 도입하면서 공시 대상 기업에 EU 택소노미 활동에 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데 반해, 국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인 IFRS S Series나 이를 기반으로 공개 초안이 발표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에서는 K-택소노미 활동에 관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K-택소노미는 아직까지는 관심 주체가 녹색채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금융기관이나 녹색채권 또는 녹색여신으로 자금조달을 시도하는 주체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린 택소노미에 대한 기업의 대응 문제는 기업이 친환경활동 보폭을 넓혀야 한다는 전략적 차원을 넘은 관리적 차원의 과제를 제시한다. EU 택소노미의 공시 요구사항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친환경 사업활동이 택소노미에서 제시하는 명확한 정량적 조건에 부합하는지 사전적으로 면밀한 검토와 검증이 필요하며, 사후적으로는 관련 거래를 기록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 보다 구체화된 절차와 시스템을 통한 관리가 요구된다.
한편 녹색채권이나 녹색여신을 통한 자금조달을 도모하는 경우, 국내 기업은 K-택소노미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검토한 뒤 이에 발맞춰 프로젝트를 설계·실행해야 한다. 반면 아직까지 일반적 국내 기업의 관심사는 K-택소노미보다는 EU 택소노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향후 정부 당국에서는 녹색투자 확대를 목적으로 여러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은 우선 EU 택소노미 공시의무에 대응하면서 K-택소노미의 적용 확대에 촉각을 기울이고, 정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