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급망 규제가 국내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강제노동 금지법,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의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 등 각종 규제가 배터리·반도체·자동차·섬유·화학 등 주력 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제1차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2025~2027)을 발표했다. 이에 한창완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윤용희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박재흠 ESG 임팩트 허브 리더(EY한영), 윤영창 전무(삼일PwC컨설팅) 네 명의 전문가에게 기업의 대응 전략과 과제에 대해 물었다.
한창완 변호사는 “공급망 기본계획이 첨단기술 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특히 중국·일본에 공급망을 의존하는 산업에 주목했다. 반면 윤용희 변호사는 “기본 계획 자체가 국내 기업에 즉각적인 영향은 없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을 고려할 때 정부 차원의 대응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박재흠 파트너는 “공급망 다변화와 ESG 대응을 위한 현실적 대책이 부족한 것이 한계”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정책 보완을 강조했다.
윤영창 전무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정부, 원청 기업, 협력사의 공동 대응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공급처 다변화는 현실적으로 높은 조달 비용과 리스크를 수반하므로 정부의 직접적 비용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내 기업의 ESG 공급망 관리 수준에 대해서는 네 사람 모두 “대기업은 선도적인 반면, 중소 협력사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윤영창 전무는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 체계가 매우 미흡하며, 특히 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이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박재흠 파트너는 “ESG를 일부 동반성장 관점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며, 실질적 ESG 공급망 관리를 위한 인력과 투자,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선이 시급한 부분으로는 “단기적 대응에서 벗어나 장기적 전략으로 ESG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윤용희 변호사는 “ESG는 자사 경쟁력이자 글로벌 거래 질서의 중심인 만큼 숲을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영창 전무는 일본·대만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기업도 정부와 함께 장기적 산업 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ESG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교육, 컨설팅, 자금 지원 등 대기업의 자발적 지원과 정부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윤영창 전무는 “중소기업이 실행 가능한 콘텐츠(plug-in model)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박재흠 파트너는 “ESG 공급망 우수 대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향후 국내 기업이 준비해야 할 핵심 과제로는 공급망 실사 체계 내재화, 탄소배출량 정보 관리, 순환경제 대응, 인권실사 확대 등이 제시됐다. 특히 윤영창 전무는 “스코프 1·2 감축 실적 확보와 제품별 탄소발자국 산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공급망의 ESG 규제를 단순한 리스크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창완 변호사는 “ESG는 거래 기회를 줄이는 요소가 아니라 잘 준비하면 오히려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흠 EY한영 ESG 임팩트 허브 리더제1차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2025~2027)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한창완 변호사(한 변호사)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과 기업에 따라 다르다. 주로 중국이나 일본에 공급망을 의존하는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은 경제 안보 품목 수급 안정과 인센티브 제공,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되지만 정치적 변수에 따라 산업에 미칠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박재흠 파트너(박 파트너) “공급망 다변화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내 생산 기반 구축 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공급망 안정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 국내 생산 기반 확대에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ESG 대응을 위한 대책과 지원 미흡 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가 계획의 성공과 영향 규모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윤용희 변호사(윤 변호사)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정부의 대응은 바람직하지만, 당장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지금은 공적 규제보다 유럽의 규제 법령, 고객사 등 거래상 지위에서 우위에 있는 이해관계자의 요구사항 등을 준수하는 이른바 고객사의 요구에 따른 자율규제가 더 중요한 상황이다.”
윤영창 전무(윤 전무) “공급망 안정화는 정부, 원청, 협력사의 공동 대응이 필수적이다.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부장 기업 육성과 함께 공급망 다변화는 물론 조달 비용 문제, 매칭 수준의 정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적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 공급망의 ESG 관리 수준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가.
한 변호사 “기업마다 편차가 크다. 수출 중심 대기업은 준비가 잘되어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은 거래 대기업의 인식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는 글로벌 선도 기업에 비해 미흡한 수준이다.”
박 파트너 “글로벌 정세 변화로 공급망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중국과의 중간재 교역에 차질이 생기면서 여러 국가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SG를 기업 경쟁력 기반으로 삼고, 공급망 변화에 대한 적응 전략이 시급하다.”
윤 변호사 “자동차산업 등 압박이 심한 업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기업이 많다. 이런 배경에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협력사의 ESG 리스크 관리를 높이고 다양한 교육과 지원, 실사가 효과를 발휘한 측면이 큰 반면, 내수 중심 기업은 준비가 부족하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는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윤 전무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준이 향상되었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취약한 데다 중소 협력사의 ESG 체계가 아직은 미흡하다. 협력사의 ESG 수준이 대기업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적절한 ESG 경영 수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창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ESG 규제가 강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이 커지고 있다.
한 변호사 “중소기업이 납품·협력하는 대기업이나 고객사가 워낙 다양하고 요구 수준도 다른 만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하는 재화 내용에 따라 적용되는 ESG 규제도 상이하다. 분쟁 광물이 문제가 되거나, 강제노동 또는 환경 침해가 문제될 수 있는 만큼 단일 해법은 없다. 에코바디스,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등의 평가 서비스 활용과 정부 지원 검토가 필요하다.”
박 파트너 “중소기업 입장에서 요구되는 ESG 기준 충족이 사업 경쟁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에 이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지만, 적절한 대응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로드맵 수립과 인력 확보가 우선이며, 정부 및 대기업의 지원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윤 변호사 “글로벌 규제 법령 내용, 고객사의 요청사항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급망 실사 체계의 신속한 구축과 내재화가 필요하다. 공급망 내 환경·인권 리스크를 식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실사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 조직 내부에 정착시켜야 한다. 또 데이터 기반의 ESG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다. 실사 체계를 운영하면서 자사와 공급망의 사업활동에 대한 ESG 리스크 데이터를 생성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이는 대응의 핵심 요소다.”
윤 전무 “고객사가 요구하는 공급망 평가·실사에 체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미흡한 ESG 경영 수준으로 인해 거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사 중심의 평가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ESG 체계를 신속히 수립·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평가 대응, 인력 양성, 추적성(Traceability) 시스템 참여가 핵심이다. 협력사 전반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국내 기업들의 ESG 규제 대응에서 개선할 점은 무엇인가.
박 파트너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ESG 공급망 관리를 위해서는 충분한 운영 인력과 협력사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ESG를 비용이 아닌 기회로 인식하고, 공급망 효율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되도록 접근해야 한다.”
윤 변호사 “단기 대응보다는 장기 전략이 중요하다. 자사 공급망의 ESG 리스크 관리 수준이 기업의 경쟁력인 만큼 기업의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윤 전무 “일본·대만처럼 정부와 기업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이들 국가의 기업은 우리보다 최소 1~3년간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ESG는 자발적 목표 설정과 생태계 구축이 관건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ESG 격차 해소 방안은 있나.
한 변호사 “대기업은 가이드라인과 인적·재정적 자원 지원을, 국가는 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며 ESG 경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대기업은 자신의 공급망에 있는 중소 협력 기업이 ESG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적 자원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국가는 ESG 규제에 대응하는 중소기업에 공공 입찰 등에서 우선권이나 추가 점수를 부여하는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파트너 “ESG 수준 격차는 실무 인력과 투자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부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ESG 경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ESG 수준 진단과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제 중소기업의 ESG 경영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기업의 책임과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며, 우수 대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윤 변호사 “자동차업계처럼 자율적 지원 활동이 중요하다. 실제 자동차업계는 완성차 회사 입장에서 협력사의 ESG 경영 수준이 종국적으로 자사의 경쟁력 또는 품질 수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이 협력사에 대한 지원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공정거래법 등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대기업에 제시해주는 노력이 중요하다.”
윤 전무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ESG를 실행할 수 있도록 플러그인 콘텐츠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실행 가능한 모델이 뒷받침되어야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다. 중소 협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 원천은 대기업 원청 기업과 함께 품질·가격·납기 등 경제적 경쟁력을 유지·혁신하는 것이고, ESG 경영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실행할 것인지는 중소 협력사의 판단이 필요하다.”
윤영창 삼일PwC컨설팅 전무기업들이 향후 3~5년 안에 준비해야 할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윤 변호사 “로컬 규제 법령 내용, 고객사의 요청사항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공급망 실사 체계를 신속하게 도입·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나와 있는 EU CSDDD, EU DR, 미국 UFLPA 등 규제 법령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의 경우 당장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박 파트너 “제품별 탄소발자국 등 실질 데이터 확보가 중요하며, 이에 따른 대응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제품별 탄소발자국은 이미 많은 국가 혹은 고객사에서 요구하고 있는 정보이며, 기업 역시 이에 대한 준비를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예시처럼 기업은 추후 실제 사업 과정에서 가장 이슈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윤 전무 “스코프 1~3 탄소감축, 하위 협력사 평가, 순환경제 대응, 인권 실사 등 4가지 과제가 핵심이다. 고객사 대상 평가 대응만 수행할 것이 아니라 하위 협력사를 대상으로 적용할 것으로 요구하면서 전체 밸류체인의 ESG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