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충격의 그날'…김일성 사망에 긴박했던 '외교 첩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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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28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제32차 30년 경과 비밀 해제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북한 측은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사실을 7월 9일 정오에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당시 외무차관을 중심으로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전 공관 비상근무 체제 돌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9일 전군 비상 경계 태세를 지시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사망 원인과 후계 구도에 전세계 관심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심장혈관 이상과 동맥경화, 심신 과로 등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 배경에 대해선 각국의 의견이 갈렸다. 한국 주루마니아대사관은 김일성의 사망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파악된다고 보고했다. 반면 중국은 김일성의 사망이 자연사라고 단정했다.러시아는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주중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은 김하중 주중한국대사관 공사에게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남북) 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촉진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게오르기 미토프 전 주한불가리아 대사대리도 "김일성이 자연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각국 소재 북한대사관은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베트남의 한 언론사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튿날 관련 소식을 보도하자 주베트남 북한대사관은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북한 관영 중앙통신의 기사가 나오자 진정됐다. 각국 북한대사관은 김일성 사망 후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객을 받는 동시에 김일성의 조문을 강하게 요청했다고도 한다.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 미국 측은 주로 부정적인 관측을 내놨다. 당시 스탠리 로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주미대사관 공사에 "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통성이 결여돼있다"며 "김정일이 핵 문제와 관련해 강경파라는 점에서 핵 개발 계획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월터 먼데일 주일미국대사는 "김정일은 약간 멍청하고 어린애 같아 지도자로 부족하다"고 혹평했다. 미 국무부는 김정일의 정책 행보에 대해서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했다.
김일성 사망으로 제네바 합의 무산될 뻔
한편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동결을 대가로 경제 협력을 약속한 첫 북핵 합의인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무산될 뻔한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김일성의 사망 이후 북한 대표단이 돌연 북미 3단계 고위급 1차 회담을 중단하면서다.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직접 조의를 표했고, 북한은 김일성 사망 사흘 만인 7월 11일 1차 회담을 개시했다.미국은 당시 북한에 완전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전면 수용, 비핵화 공동 선언 등을 요구했다. 북한은 북미 관계 정상화, 경수로 지원,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보장 등을 조건으로 내밀었다.
배성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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