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감'조차 표명 못하는 對美 협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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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미국에 목소리 내기 시작
다른 나라와 공조 등한시 안 돼
하지은 경제부 기자
다른 나라와 공조 등한시 안 돼
하지은 경제부 기자
![[취재수첩] '유감'조차 표명 못하는 對美 협상 전략](http://img.toplightsale.com/photo/202503/AA.39973800.1.jpg)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난 2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을 겨냥해 이례적으로 ‘유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일본은 캐나다와 유럽연합(EU) 중국 등이 미국의 관세 전쟁에 “보복하겠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낼 때도 저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 야권에선 미국을 상대로 보복 관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자동차 관세는 사실상 일본과 한국을 정조준했다.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를 적용받는 차량용 부품은 관세를 한 달 면제해주기로 해 미국의 최대 자동차 무역 적자국인 멕시코(451억달러)는 일단 한숨 돌렸다. 자동차 무역적자 2, 3위인 일본(391억달러)과 한국(353억달러)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본까지 미국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4년간 31조원 투자’라는 선물을 건넨 직후 자동차 관세를 공식화하고, 행정명령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며 한국을 직접 겨냥까지 했는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정중동이다. ‘최대한 미국 눈에 띄지 말자’는 정부의 일관된 협상 전략이다.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데다 외교·안보적 특수성, 국가 리더십의 부재까지 고려하면 방어 중심의 협상 전략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에는 이견이 나오고 있다. 통상당국 관계자들도 한국이 ‘더티 15’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고 품목관세 예외도 쉽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조금씩 내놓고 있다. “어차피 맞는 관세, 모두 다 같이 맞는 게 최선”이란 회의론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대미 협상에만 주력하면서 시야가 좁아져 통상 선택지를 스스로 줄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른 나라들과의 대응 공조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EU 통상 장관으로부터 ‘한국도 EU의 대미(對美) 보복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보복 관세에 동참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을 예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한국도 다른 나라와의 교감과 공조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국이 보호장벽을 쌓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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