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흙투성이의 남자는 나무 덤불 사이에 처박혀 있는 골프 가방을 끌고 나온다. 가방을 들쳐 메고 남자는 그늘집으로 향한다. 그늘집에는 이미 술판이 한창이다. 장관부터 기자, 그리고 컨트리클럽의 대표까지. 종잡을 수 없는 구성의 사람들은 남자를 아는냥 모두 놀란 기색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놀라는 기색을 하는 이 사람들 역시 한 바탕 몸싸움을 벌인 듯 행색이 어수선하다. 도대체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이 시간에, 반나절 동안 이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벌인 것일까.

지난 2일 개봉한 <로비>는 배우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 그리고 <허삼관>(2015)에 이은 세 번째 연출작이다. 영화는 오랜 시간의 연구로 전기자동차 충전 기술을 개발한 두 친구가 라이벌이 되어 만나는 시점에서 전개된다. ‘창욱’(하정우)은 비교적 정직한 방법으로 사업을 유지하려는 반면, 그의 라이벌 ‘광우’(박병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키우고자 하는 야심가이다. 창욱의 회사가 보유한 기술이 광우를 앞서지만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얼마 지나지 않아 창욱에게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다. 정부에서 전기 자동차 충전 기술을 필요로 하는 4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회를 광우가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국책사업의 결정권자이자 골프에 미친 ‘조 장관’(강말금)을 포섭해 골프 로비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다급해진 창욱은 또 다른 결정권자임과 동시에 조장관의 남편인 ‘최 실장’(김의성)을 상대로 로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격전의 로비는 한날한시 같은 골프장에서 이루어진다.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로비>는 하정우의 데뷔작 <롤러코스터>와 많은 지점을 공유한다. 첫째로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코미디 장르 안에서도 소동극의 형태를 표방한다. <롤러코스터>가 (비행) ‘기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코미디를 구성한다면, <로비>는 절체절명의 로비가 벌어지는 '골프장'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공간이 갖고 있는 법칙에 인물들이 완전히 종속된다. 따라서 이야기, 즉 코미디의 상당 부분은 이 인물들이 탈출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전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품들이 갖는 두 번째 공통점은 이 한정된 공간에 매우 많은 인물을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롤러코스터>가 메인 캐릭터인 ‘마준규’(정경호)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하는 승객들, 승무원 등 모두가 영화의 에피소드를 채우듯 이번 <로비>에서도 창욱과 광우를 포함한 메인 캐릭터는 (두 개의 라운딩을 대조하여 보여주므로) 적어도 8명에 달한다. 물론 라운딩 밖에서 로비를 돕는 조력자 캐릭터로 분하는 ‘김 이사’(곽선영)와 창욱의 조카인 ‘호식’(엄하늘) 등 사건의 중심을 오가는 인물들은 더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너무 많은 캐릭터가 빚어내는 너무 많은 사건, 혹은 상황극들로 웃음보다는 피로감을 더 한다. 예컨대 ‘로비’와 크게 상관없는 컨트리 클럽 대표의 아내 ‘다미’(차주영)와 조장관의 라운딩에 끼게 되는 배우 '마태수'(최시원)의 황당한 로맨스 같은 설정은 8명 (더하기 외부 요원들)에게 모두 에피소드를 만들어 줘야 하는 명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족’이다.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로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로비>는 실패한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식 코미디다. 다수의 인물과 사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밸런스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8명의 메인 캐릭터가 어떻게든 등장해야 했다면, 지금 영화에서의 설정처럼 이들 중 중심인물, 즉 로비를 벌이는 인물인 창욱과 광우, 조 장관과 최 실장을 중심으로 나머지 캐릭터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을 것이다. 과다한 사건은 과다한 대사(대부분은 말장난에 가까운)를 수반하고, 이는 영화가 주는 피로를 더할 뿐이다.

그럼에도 <로비>를 통해 감독 하정우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그의 뛰어난 관찰력이다. 폭죽처럼 끊임없이 터지는 에피소드의 틈에서 그가 정말로 골프장에서 보고 겪었을 상황들, 예컨대 굳이 식전에 모여 아침을 같이 먹는다거나 운동 중간에 술을 마셔야 하는 등 과도한 집단주의와 허례허식이 포함된 한국식 골프 문화를 비교적 투명하고 비판적으로 반영한다. 따라서 이번 작품 <로비>는 감독으로서 하정우의 완성작이 아닌, 그의 실패와 잠재력을 모두 보여주는 서막이 될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영화 '로비' 공식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