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시작은 관세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교역국 간 무역 불균형이다. 이에 관한 시각 차이와 함께 자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국가 간 치열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상계관세와 함께 국제사회가 빈번하게 사용해 온 비관세 장벽이다. 비관세 장벽이란 관세를 제외한 모든 무역 제한 조치를 의미한다. 산업보조금을 문제 삼거나 통관 절차, 위생검역을 까다롭게 해 시간과 비용을 증가시키고 각종 인증을 요구해 수출국과 생산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공급망 실사를 요구하거나 폐기물, 유해물질,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하는 ESG 규제 역시 비관세 장벽의 범주에 포함된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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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최근 ESG 규제를 기반으로 한 비관세 장벽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제품의 생애주기평가(LCA), 탄소발자국(PCF) 정보, 인권 실사 자료를 요구하거나 폐기물 사용 비율, 특정 친환경 인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ESG 정보 공시를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내외 거시경제 여건이 어려울수록 각국은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에 따라 주요국이 ESG를 비관세 장벽으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최근 강화되는 규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기업의 대응력 강화에 매우 중요한 과제기도 하다.

◇ ESG 장벽 더 강화될 듯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은 대표적인 ESG 규제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전자제품, 의류·신발, 섬유 산업을 대상으로 강력한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중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주요 생산국이 포함돼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도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CBP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4분기 동안 총 2501건의 제재가 있었고, 이 가운데 81.6%인 2042건이 우리 산업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동차 관련 산업이었다.

제재 대상 중 32.9%(822건)는 최종 통관 거부, 61.3%(1532건)는 통관 보류 상태로 실질 제재율은 94.1%에 이른다. 보류 해제된 건은 5.9%(147건)에 불과했다. 이는 ESG 규제가 무역 제재로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한국 기업들이 ESG 기반 비관세 장벽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에서도 강제노동방지법이 시행된 만큼 전자부품·소재산업, 배터리 및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완성차산업, 공급망 리스크가 큰 의류·섬유산업에 집중적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필요하다.

또 올해는 유럽의 주요 ESG 규제 가운데 하나인 산림전용방지법(EUDR)이 1년 연기 끝에 시행됐고, 내년부터는 디지털제품여권(DPP) 제도, 2027년에는 공급망 실사법(CSDDD) 시행이 예정돼 있어 ESG 기반의 비관세 장벽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 기업에 주어진 실질적인 대응 시간은 약 2년에 불과하다.

◇ 무역장벽으로 진화하는 ESG

수출입 당국 간 또는 거래 당사자 간 무역수지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한다. ESG가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될 경우 초기에는 해당 ESG 규제를 준수했는지에 따라 제품 통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EUDR 적용 대상 제품은 생산에 사용된 원·부자재가 벌채지역에서 획득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위치 확인 정보와 ESG 실사 정보를 함께 제출하면 된다. ESG 규제를 수입품 통관을 판단하는 스크리닝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규제를 준수하고 정보를 성실히 제공하면 거래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관세 장벽이 한층 강화된 사례를 보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거래 조건을 자국에 유리하게 설정해 수출 기업을 제약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예컨대 재활용산업이 발달한 EU에선 배터리 규정(EUBR)을 통해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을,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핵심 광물 재활용 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내수 시장이 작고 자원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재활용 광물을 수입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산 원가가 상승할 수 있다.

비관세 장벽이 더 강화될 경우 수입국은 생산자책임원칙(EPR)을 적용해 제품 생산자에게 폐기물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고 나아가 제품 생애주기까지 고려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이해득실을 따져 규제 적용 시기와 대상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무역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

인권 관련 법 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국은 공급망 인권 실사를 제도화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차질 이후 재생에너지 사용이 불가피해진 유럽은 EU 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함으로써 자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보전하려 하고 있다.

ESG 역시 ‘무기화’(weaponization)할 수 있다는 얘기다. ESG는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ESG 규제가 무역 제재 수단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다. 그 본질은 인류 공동 번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에 있다.

글로벌 관세 전쟁 넘어 'ESG發 비관세 장벽'도 몰려온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자국 우선주의를 자극했고, 자국 이익이 최우선이 된 냉혹한 현실에서 각국은 ESG를 자국 산업에 유리한 형태로 비관세 장벽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분석을 통해 ESG 기반 비관세 장벽을 극복해야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지킬 수 있다.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