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애국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 SNS에는 “국산품을 지지하는 것, 나부터 시작합니다”는 영상도 올라왔다(왼쪽). 중국 유튜버가 에르메스 핸드백 원가는 싼데 판매가는 3만8000달러에 달한다며 중국산 소비를 촉구하고 있다. /틱톡·더우인 캡처
중국에서 ‘애국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 SNS에는 “국산품을 지지하는 것, 나부터 시작합니다”는 영상도 올라왔다(왼쪽). 중국 유튜버가 에르메스 핸드백 원가는 싼데 판매가는 3만8000달러에 달한다며 중국산 소비를 촉구하고 있다. /틱톡·더우인 캡처
“새 제품이 나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고객이 확 늘었어요.” 1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쇼핑센터 카이더몰. 중국 최대 통신사 화웨이 매장은 평일인데도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매장 직원 우보씨는 “요즘 아이폰이 아닌 화웨이폰으로 갈아타겠다는 고객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복도 반대편 애플 매장은 한산했다. 직원들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고객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 쇼핑몰 1층에 입점한 스타벅스와 루이싱커피 매장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평소 붐비던 스타벅스는 한산한 데 비해 중국 브랜드 루이싱커피에는 연신 주문 벨이 울렸다. 루이싱커피 직원은 “통상 하루에 음료를 600잔 정도 판매하는데 최근 들어 주문량이 15%가량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의 핵심 타깃으로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자 중국에선 ‘궈차오’(國潮·애국주의 소비)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인 고객에게 봉사료 104%를 더 받겠다’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식당이 있는가 하면 코카콜라, 테슬라, 맥도날드 등을 대체할 중국 브랜드를 공유하는 SNS까지 퍼지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의류 사업을 하는 한국인 기업가는 “애플과 스타벅스가 중국에서 고전하는 데는 중국 기술력과 브랜드를 뽐내고 싶어하는 중국인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왔다”며 “여기에 미국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해 중국인의 궈차오가 다시 불붙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도 이런 기류를 지지하고 있다. 현지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미국 관세 압박의 단계별 전략 방침을 수립해 상무부, 인민은행 등과 함께 미디어·출판산업을 감독하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온라인 콘텐츠를 관리하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을 태스트포스(TF)에 합류시켰다. 실제 중국 인플루언서는 틱톡, X(옛 트위터) 등에 미국 제품의 중국 공장 생산 원가를 공개하는 게시물을 집중적으로 올리며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의 대표 SNS 웨이보와 더우인, 샤오훙수에선 가전·의류·인터넷 서비스 관련 미국 주요 브랜드와 중국 브랜드를 비교하며 자국 제품 가성비를 강조하는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단순한 신경전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난달 중국 수출은 관세 전쟁을 앞둔 ‘밀어내기’ 덕분에 1년 전 동기보다 12.4% 증가했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상호관세 여파가 본격화해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많다. 성장의 핵심 축인 수출 타격을 상쇄하려면 내수 진작이 시급하다.
미국발 주문이 줄면서 공장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의 자전거용 철제 공장에서 근로자가 쉬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발 주문이 줄면서 공장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의 자전거용 철제 공장에서 근로자가 쉬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중국 제조업계에선 벌써부터 ‘수출 보릿고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미·중 무역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중국 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13일 중국 항구의 컨테이너 처리량은 전주 대비 6% 감소했다. 중국에서 미국 서부 해안으로 이동하는 상품운임지수는 같은 기간 18% 급락했다. 해운업계 정보 분석 기관 라이너리티카는 향후 3주간 중국에서 화물 예약이 30∼6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의 한 도매업자는 기자에게 “미국발 주문이 딱 끊겼다”며 “미국 기업의 계약 취소로 대미 수출 비중이 단기간에 반 토막 나는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의 수출 허브이자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저장성 이우 시장은 관세 전쟁 이후 텅텅 비어가고 있다. 상인 7만5000여 명이 모여 봉제 인형부터 모자, 장난감 저격총까지 온갖 제품을 파는 이 시장에선 이달 들어 미국발 계약 취소로 휴무와 인력 감축을 고려하는 제조업체가 늘고 있다. 광저우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불과 2개월 만에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며 “공장들이 관세 전쟁 여파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어 근처 작업장 20곳이 지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인근 청바지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한 근로자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예전에는 밤 12시에 퇴근하던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일감이 없어 저녁 시간 전에 귀가한다”고 토로했다.

중국 지방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이난성은 2027년까지 100억위안(약 1조95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성해 소비자 대출 보조금에 쓰기로 했다. 쓰촨성은 자동차, 가전제품, 가구 등 대형 가정용품 구매를 위한 소비자 대출에 저금리를 지원한다. 중국 상무부는 다른 5개 주요 기관과 함께 고급 요리, 문화 관광, 공연 분야를 겨냥한 ‘중국 쇼핑’ 캠페인을 시작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