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IFA 코리아) 이사장,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11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왼쪽부터)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IFA 코리아) 이사장,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11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은 국제조세 흐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로버트 다논 국제조세협회(IFA 글로벌)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은 지난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OECD는 다자주의에 기반한 국제조세 규범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미국의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1938년 설립된 IFA는 세계 114개국의 교수·실무자 1만3000명으로 구성된 국제조세 연구 단체다. 다논 의장과 크리스티안 케저 재무총장으로 구성된 IFA 임원진은 지난 11일 '필라 2와 그 영향'을 주제로 한 순회 강연(Travelling Lectureship Program)을 위해 7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한국경제신문은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IFA 임원진과 이번 방한을 주최한 김석환 IFA 코리아(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을 함께 만났다.

"트럼프 재집권,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의 변수"

IFA는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인도, 브라질 등 세계 12개국에서 순회 강연을 열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필라 2의 영향을 회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다. 필라 2는 전 세계 어디서든 15% 미만의 세금을 냈다면 모회사 소재국에서 그 차액을 과세하는 '글로벌 최저한세'를 골자로 한다. 한국은 작년부터 적용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이 국제조세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설명이다. 다논 의장은 "세계 각국이 협력해 세법을 이해하자는 것이 필라 체계의 핵심"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이고 보호무역 정책으로 회귀하는 이상,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다자 규범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필라 2는 미국에서 도입이 더딘 상태다.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케저 총장은 미국의 보복관세 정책이 조세 정책과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타국의 기업을 유치하는 동시에 견제하려는 양면성을 띤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은 다국적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부가가치를 창출시키려는 목적인데, 조세 정책을 추가로 펼 경우 기업의 미국 내 부담이 역으로 커진다는 설명이다.

케저 총장은 "미국은 현재 대부분의 조세조약 하에서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이 0%지만 향후 보복 조세 조치가 생길 경우 35%, 심지어 60%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올린 이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세 부담을 안게 되는데, 결국 조세와 통상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변화하는 국제조세 체계... 분쟁에 대비해야

필라 체계가 도입되면서 국제조세 체계가 정교해지고는 있지만, 동시에 분쟁 가능성도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논 의장은 "필라 2 같은 새로운 체계에서는 국가 간 해석 차이가 발생해도 별도의 분쟁 조정 방법이 없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 유일한데, 기업 입장에서는 구제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취약성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필라 2의 핵심 원칙인 소득산입규칙(IIR)과 미과세소득과세규칙(UTPR)도 국가 간 대립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IIR은 다국적기업의 해외 자회사에서 세율이 낮게 부과된 이익이 있다면 모회사가 그 차이를 메꾸도록 하는 규칙이다. UTPR은 최저한세를 적용하지 않는 나라에 기업의 본사가 있을 경우, 그 자회사에 세금을 대신 부과하는 규칙이다.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독일 지멘스의 국제조세 대표이기도 한 케저 총장은 기업 간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봤다. 가령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독일 기업은 IIR을 적용받지만, 정작 미국 기업은 독일이 UTPR을 적용하지 않는 한 세율이 더 낮아진다. 케저 총장은 "사실상 역외 과세"라며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독일 기업과 미국 기업 간 경쟁 왜곡이 일어나는 셈"이라고 했다.

국제조세 정책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당국이나 기업이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다논 의장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느냐보다도 얼마나 예측이 가능한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며 "조세 정책이 확실성과 일관성을 갖췄을 때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김 이사장 또한 "미국의 태도에 따라 어렵게 마련한 국제 공통 규범인 필라 2가 힘을 잃고 국가 간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세제·세정 당국도 기업이 겪는 애로사항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격동의 국제조세, UN 방향성 주시해야

IFA 임원진은 향후 UN(국제연합)의 움직임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UN과 OECD는 국제조세 체계를 결정하는 두 핵심 주체고, 조세 분쟁이 늘어나는 만큼 두 기구 간 해석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다논 의장은 "각국이 일방적인 조세 조처를 하는 경우가 늘면서 국제조세의 법적 확실성이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며 "양측의 조세 관련 의제가 충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케저 총장은 "UN이 논의하는 의제는 국경 간 서비스, 디지털 경제, 조세 회피 등 OECD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조세 이슈와 상당수 겹친다"며 "만장일치인 OECD와는 달리 UN은 사안에 따라 3분의 2나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했다. OECD보다도 UN이 더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왼쪽부터)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IFA 코리아) 이사장,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11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왼쪽부터) 김석환 한국국제조세협회(IFA 코리아) 이사장, 크리스티안 케저 IFA 글로벌 재무총장, 로버트 다논 IFA 상설학술위원회(PSC) 의장이 11일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디지털서비스세(DST)가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디지털세는 물리적 사업장을 두지 않고 인터넷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 과세하는 세금이다. 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세금이지만, 관련 내용이 필라 1에 포함되자 상당수 국가는 도입을 유예했다. 케저 총장은 "필라 1에 미국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며 "EU조차도 미국의 관세 조치에 맞서 디지털세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조세 당국의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나왔다. 김 이사장은 "한국은 대외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국제조세 제도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며 "정부와 민간 기업은 물론 비정부조직인 IFA 차원에서도 국제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