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이 생산성 30%↑…LG이노텍, FC-BGA 사업 글로벌 탑티어로 도약
지난 17일 경북 구미에 있는 LG이노텍의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생산 공장인 드림팩토리. 방진복을 입고 에어워시를 마친 뒤 공장 내부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친 건 사람이 아닌 수십여대의 자동물류로봇(AMR)이었다. 즐비하게 놓인 장비들 사이로 이 로봇들이 각종 원자재를 막힘없이 공정설비로 운반했다. 로봇에 미리 고객이 요구한 제품 스펙과 납기 일정 등을 입력을 해둔 덕분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작업 인력은 로봇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만 할 뿐, 10여단계에 걸친 제조 작업을 사실상 로봇들이 책임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양품 여부를 따지는 최종 마무리 작업도 로봇의 몫이었다. 집게 형태의 로봇이 황동색 기판 완성품을 검사장비로 옮기자 탑재된 인공지능(AI) 딥러닝 비전 시스템이 양품 여부를 30초 내 파악해냈다.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제조를 주력으로 해온 LG이노텍이 FC-BGA 사업을 차세대 핵심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LG이노텍이 2022년 LG전자로부터 이 공장을 사들인 뒤 업계 최초로 최첨단 AI 자동화 공정을 도입한 이유다. 이 사업에 2022년 진출한 LG이노텍은 후발주자인 만큼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선 필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LG이노텍은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을 내세워 글로벌 상위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생산 인력 경쟁사 대비 50% 수준

LG이노텍 드림팩토리의 핵심은 인력을 최소화하고, AI를 활용한 자동화다. FC-BGA 제조 과정이 사람의 호흡, 미세 스크래치 만으로도 불량률이 높아지는 만큼 사람의 접근을 원천 차단해 전 공정을 AI, 로봇, 딥러닝 등 최신 AI기술과 장비로 대신하겠다는 것.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및 그래픽처리장치(GPU), 통신용 칩셋 등에 주로 쓰이는 차세대 반도체 기판이다. AI, 자율주행, 확장현실(XR) 등의 열풍으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제조 과정은 만만치 않다. 고부가 FC-BGA 기판은 제품 설계, 공정 등 개발 난도가 높아 수율이 일반 기판 95%보다 훨씬 낮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LG이노텍은 수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제품 경쟁력을 높이면 후발주자라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율을 높일 수 있는 경쟁력은 AI 비전검사 시스템이다. 고객이 요구한 제품의 스펙이 제대로 구현됐는지 AI를 통해 자동으로 검사하는 가장 중요한 최종 관문이다. 라인품질컨트롤(LQC)으로 불린다. 불량 제품을 특정하고, 사람 개입없이 자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검사 데이터는 즉시 고객에게 전송돼 품질 투명성도 보장된다. 박준수 LG이노텍 FS 생산팀장은 "이 과정으로 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 90% 단축하고, 샘플링 검사를 위해 투입하던 인원도 90%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품 불량, 설비 고장 등을 사전 예방할 수 있는 디지털 시뮬레이션 시스템에도 AI를 접목해 사람이 직접 제품 이상 여부를 확인하느라 들였던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수율을 높이는 요소다. 공정 설비를 구축하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3D 모델링을 활용한 팩토리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공정 설비의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 수정한 뒤 최적의 공정 설비를 구축할 수 있게한 것. LG이노텍은 이를 통해 초기부터 양산 수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램프업(생산 확대) 기간도 기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였다.

강민석 LG이노텍 기판소재사업부장(부사장)은 "드림팩토리는 AI기반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면서 LG그룹사의 모든 기술을 집대성했다"며 "수율이 크게 높아졌을 뿐 아니라 공장 작업 인력도 경쟁사 대비 50% 정도 적다"고 말했다.

LG이노텍은 향후 전 생산 과정을 자동화한다는 계획이다. 공정 과정에 단순 작업인력 뿐 아니라 엔지니어 등 사람의 개입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를 위해 2026년까지 생산 과정 중 품질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지 및 분석해 자동으로 보정하는 공정 지능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2030년 조단위 규모 육성…추가 투자 검토

업계선 LG이노텍이 이 시장에서 얼마나 존재감을 키울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FC-BGA 시장은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가 주도하고 있다. 대만 유니마이크론, 오스트리아 AT&S, 한국의 삼성전기 등이 뛰어들어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후지키메라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FC-BGA 시장은 지난 2022년 80억 달러에서 오는 2030년 164억 달러까지 커질 정도로 성장성이 크다.

LG이노텍은 오는 2030년까지 FC-BGA사업을 조단위 규모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글로벌 빅테크에 PC용 FC-BGA를 처음 공급한데 이어 최근 글로벌 빅테크 고객 추가 확보에 성공했다. 올해는 PC CPU용 FC-BGA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내후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해온 기판소재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고객사 물량 수주에 따라 생산 능력을 더 늘리기 위한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공장 인수 건 까지 포함하면 전체 투자 규모는 1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이노텍은 차세대 유리 기판 기술에 대해서도 오는 2027년 사업화를 목표로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김채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