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탈(脫)러시아산 에너지’를 추진하면서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산 가스(PNG) 수입은 줄었지만 LNG 수입이 오히려 늘고 있어서다. 다만 EU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산 에너지 계약 금지

EU, 러 가스 수입 끊나…'화석연료 구매 금지법' 만지작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가 역내 기업의 러시아 화석연료 계약 체결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U 집행위원회 고위 당국자는 “현재 마련 중인 러시아산 에너지 탈피 로드맵의 하나로 관련 금지법 제정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EU 기업이 러시아와 기존에 맺은 가스 공급 계약을 위약금을 내지 않고 조기 해지할 수 있는 정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러시아산에 대한 신규 무역 제한 조치 등 다양한 관련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22년 EU 회원국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리파워EU(REPowerEU)’ 정책을 시행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유럽 지역에 가스 공급을 줄이고 러시아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면서다. 당시 EU가 수입한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러시아가 공급했다. EU는 2027년까지 탈러시아산 에너지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러시아 의존 줄었지만

이 같은 정책의 효과는 나타났다. 유럽의회에 따르면 EU 전체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5%에서 지난해 18%까지 떨어졌다. PNG 수입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80% 이상 줄었다. EU가 수입을 의무적으로 줄인 영향도 있지만 주요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이 2022년 9월 폭발 사고로 작동이 중단됐다. ‘노르트스트림2’는 같은 해 2월 독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로 사용 승인 절차를 중단했다.

현재 EU로 향하는 PNG의 유일한 경로는 흑해를 통해 튀르키예를 거쳐 중부 유럽으로 이어지는 ‘튀르크스트림’ 가스관뿐이다. 다른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인 ‘블루스트림’은 튀르키예에만 공급한다.

반면 EU 회원국의 러시아산 LNG 수입은 늘었다. 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작년 4분기 EU의 러시아산 LNG 수입 물량은 2021년 1분기보다 18% 증가했다. 작년 기준 EU가 수입한 전체 가스의 19%가 러시아산이었다.

러시아산 LNG의 주요 수입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다. 프랑스의 지난해 러시아산 LNG 수입량은 1년 전보다 80% 이상 늘었다. 토탈에너지스(프랑스), 세페(독일), 나투르지(스페인) 등 해당 국가의 에너지 기업이 이미 장기 계약으로 러시아 LNG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산 LNG는 미국산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미국산 LNG 가격(유럽 도착 기준)은 MMBtu(열량 단위)당 10~16달러다. 러시아산은 8~12달러로 알려졌다.

◇탈러시아산 에너지 성공할까

작년 에너지 수입으로 EU가 러시아에 지불한 금액은 219억유로(약 35조5393억원)다. EU가 같은 기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재정 지원액(187억유로)보다 많다. 영국 국제기후·에너지정책연구소(EMBER)는 “이런 상황은 EU의 2027년 러시아 가스 수입 전면 중단 목표와 어긋나고,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면서 EU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U는 현재 논의 중인 신규 대(對)러시아 제재안에 LNG 수입 금지 방안을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고 공급 불안정을 우려한 일부 회원국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공동 외교·안보 정책 관련 사안은 이사회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EU 집행위는 가중다수결(QMV) 방식으로 ‘에너지 탈러시아’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회원국의 55% 이상(27개국 중 최소 15개국)이 찬성하고, 찬성한 국가들의 인구가 EU 전체 인구의 65% 이상이어야 한다. EU 집행위는 관련 로드맵을 다음달 6일 발표할 예정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데 전념하고 있고, 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완/이소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