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기소와 수사’라는 전통적 업무 영역을 넘어 ‘공익대표자’ 활동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유령법인 해산부터 친권상실 청구까지 공익을 위한 민사·상사 소송에서 ‘당사자’로 직접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경제범죄와 친족 분쟁이 증가하면서 검찰의 공익대표 업무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유령법인, 검찰이 직접 해산시킨다
2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 3월까지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법인해산명령은 1316건에 달한다. 이 중 79%인 1036건이 인용됐다. 연평균 200여 개 법인이 검찰 ‘손’에 시장에서 퇴출된 셈이다.
검찰의 주요 타깃은 금융범죄에 악용되는 ‘유령법인’이다. 이들 법인은 범죄 수익을 관리하기 위한 차명계좌(대포통장) 개설에 주로 활용된다. 금융회사는 개인 계좌는 주민등록번호로 거래를 제한하지만 법인은 사업자번호만 있으면 계좌 개설이 가능해 범죄조직이 선호하는 수법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인 대표가 처벌받더라도 법인은 그대로 남아 있어 언제든 범죄에 재활용될 수 있는 법적 허점을 차단하는 것이 법인해산명령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5년과 1465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SG증권 주가폭락 사태’의 주범인 라덕연 씨 일당은 이 같은 방식으로 범죄수익을 세탁했다. 검찰은 라씨 일당이 대표로 있던 법인 10개에 대해 해산명령을 청구해 모두 인용 결정을 받았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자 경찰과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단을 운영 중인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지난달 공판부 검사와 수사관을 모아 유령법인전담대응팀까지 신설했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이미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해산명령 청구 대상을 계속 선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와 노인 지키는 검사들
검찰이 상법상 법인 해산을 청구할 수 있는 건 검사 업무범위가 ‘공익의 대표자’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청법은 검사가 범죄 수사와 공소 제기 이외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이나 행정소송을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민법은 후견인(성년·미성년) 선임, 실종선고, 양육자 변경, 파양, 친권상실 등을 청구할 수 있는 당사자 중 하나로 검사를 지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나 보호자 없는 고령자를 위한 법적 지원이 늘고 있다. 검사들은 범죄 수사·기소 과정에서 이런 사례를 포착하면 자발적으로 후견이나 친권상실 청구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민관기관과 협력해 사전에 법률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부산지검은 작년에만 13건의 미성년후견인 선임 청구를 진행해 모두 법원의 인용을 받았다. 부모의 방임이나 사망으로 위탁가정에서 보호 중인 아동을 위한 법적 지원을 요청한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의 의뢰에 따른 조치다.
검찰의 공익대표 업무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경제범죄와 친족 분쟁이 증가하는 사회 변화에 맞춰 이 분야 업무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가 제한되면서 검찰의 새로운 업무 영역으로 공익대표 활동이 주목받는 측면도 있다. 대검 관계자는 “현재는 검사들로부터 자발적으로 공익대표 업무를 보고받는 형태”라며 “처리된 사례는 집계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