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Fed의 금리 인하에 대한 베팅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관세로 인한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넘어 미국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내려오나 싶었던 인플레이션이 관세로 다시 뛸 수 있는 만큼 추가 금리 인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공식 발언과는 상충됩니다.
SOFR 선물 스프레드. 자료=블룸버그
SOFR 선물 스프레드. 자료=블룸버그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무위험지표금리인 SOFR 선물 스프레드는 이날 -110bp(1bp=0.01%포인트)까지 급락했습니다. 미국 초단기금리의 벤치마크인 SOFR은 옵션시장에서 Fed의 정책금리 대체 지표로도 쓰입니다. 2025년 6월물과 2026년 6월물 간 금리 격차가 이렇게 급격히 좁아진 것은 이 기간 Fed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이상 인하할 것이라는 데 트레이더들이 베팅했다는 뜻입니다.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페드워치를 봐도 올 12월 Fed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00bp 낮은 3.25~3.5%에 도달해있을 확률이 93.7%에 달합니다. 당장 5월 FOMC는 건너뛰더라도, 6월부터 12월까지 남은 다섯 번의 회의에서 Fed가 25bp씩 네 번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 한경DB
제롬 파월 Fed 의장. 한경DB
이런 시장의 기대는 파월 의장의 발언과 괴리가 큽니다. 파월 의장은 4월 두 차례의 공식 발언을 통해 "관세가 최소한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중앙은행은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죠.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파월 의장을 '느림보(Mr. Too Late)'라고 지칭하면서 "하루 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저격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식품과 에너지 물가가 하락하는 추세여서 인플레이션은 거의 없을 수도 있지만, 느림보(파월 의장)가 지금 금리를 낮추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고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시장이 지금처럼 급격한 금리 인하에 베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관세발(發) 인플레이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증시 하락은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이끌었습니다. 다만 경기 침체 리스크까지는 진지하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월가의 중론입니다. 모건스탠리는 "주식시장은 최근 실적 전망 하향 조정에서도 볼 수 있듯 예상보다 더 강한 성장 둔화 가능성은 상당 부분 반영한 상태라고 판단한다"면서 "다만 완만한 경기 침체 리스크까지는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실업률이 약 200bp 상승하고, 월간 비농업 고용자 수가 10만 명 미만으로 증가하는 등 노동시장이 약화되면서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는 리스크에는 시장이 대비하지 않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경제가 침체에 빠져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고용인데, 현재까진 미국 실업률이 4% 안팎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보니 성장 둔화를 넘어선 경기 침체까진 시장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고용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으니 소득과 지출도 견고했습니다. 경제 성장이 좀 더뎌져도 일자리가 튼튼하면 소득이 유지되고, 그렇다면 관세 때문에 물가가 더 높아져도 지출은 계속 할 테니 침체까진 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파란색 선은 컨퍼런스보드의 소비자신뢰지수 설문조사 중 '일자리가 많다'는 응답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응답률을 뺀 수치(우축). 노란색 선은 미국 실업률 추이(좌축).
파란색 선은 컨퍼런스보드의 소비자신뢰지수 설문조사 중 '일자리가 많다'는 응답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응답률을 뺀 수치(우축). 노란색 선은 미국 실업률 추이(좌축).
그런데 이 믿음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견고했던 고용시장이 약화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고용정보업체 ADP에 따르면 4월 미국 민간고용 증가폭은 6만2,000명으로 전월 14만7,000명, 예상 11만4,000명보다 크게 낮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업률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온 미국 소비자들의 고용시장 전망도 급격히 악화하고 있습니다. 컨퍼런스보드의 4월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자리가 많다'고 응답한 비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응답률을 뺀 수치는 15.1%까지 하락했습니다. 작년 9월 이후 최저치입니다. 르네상스매크로는 "설문조사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지만, 이 수치는 실제 고용시장이 악화할 때 대체로 유사하게 움직여왔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미국 경기 침체는 기본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전망도 아직은 높아야 50 대 50 정도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침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미국 증시가 최근 저점(4월 9일 장마감 기준 S&P500 4,982)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면서 "현 시점에서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결국 침체가 없고 경제 지표가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장이 Fed의 급격한 금리 인하에 대한 베팅을 늘린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고용 데이터가 악화하고 침체 리스크가 보다 현실화된다면 결국 Fed가 등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믿음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침체를 피하려면 ①트럼프 정부가 훨씬 더 극적으로 관세 정책의 수위를 완화하거나 ②바이든 정부가 했던 것처럼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그것보단 ③Fed가 금리를 인하하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월가와 시장의 생각입니다.


Fed 내부에서도 보다 신속한 금리 인하 필요성을 두고 균열이 감지됩니다.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지난 24일 인터뷰에서 "오는 7월 이후엔 높은 관세로 실업률이 오를 수 있다"면서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에 과민반응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시장이 크게 하락한다면 Fed가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베스 해맥 클리브랜드연은 총재도 "명확한 데이터가 나온다면 6월에도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면서 월러 이사와 같은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파월 의장의 발언과 대조적입니다.
파월 무시하는 시장, '더 세고 더 빠른' 금리 인하에 베팅 [빈틈없이월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침체가 닥치면 자신의 관세 정책이 아닌 '느림보' Fed의 고금리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릴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Fed도 이것을 모를 리가 없겠죠. 인플레이션 우려가 남아 있어도 Fed가 결국 선제적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시장이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이션'의 악몽에 시달리는 파월 의장으로선 신중론을 고수하고 싶겠지만, 정말로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진다면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미국 경제 지표들이 아직은 견고해보인다지만, 고율 관세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하면 지표가 악화하는 것도 순식간일 수 있습니다. Fed의 "더 많은, 더 빠른" 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시장의 회로엔 Fed가 그 상황까지 방치하진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있어 보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