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마지막으로 중국 모터쇼를 찾은 건 2018년 베이징모터쇼다. 사드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중국 시장이 막히자 정 회장의 행선지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 바뀌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일 상하이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 상하이모터쇼에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참관했다.
업계의 해석은 두 가지다. 최근 몇 년 새 부쩍 성장한 중국의 ‘레드 테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 재도전장을 내기 위한 준비 작업이란 얘기다.

◇ 전기차 부스 꼼꼼히 살펴

2일 중국 현지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전날 상하이 국가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상하이모터쇼를 찾아 주요 임원들과 3시간가량 전시장을 둘러봤다. 올해 상하이모터쇼에는 100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정 회장은 현장에서 CATL, 비야디(BYD) 등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BYD는 5분 충전에 470㎞를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 충전 기술을 내놓았고, CATL은 한 달여 만에 이를 추월하는 52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를 이번 모터쇼에서 선보였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성능을 높이기 위해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연구에 힘쓰고 있다.

정 회장은 화웨이, 모멘타 등 중국 대표 자율주행 업체들도 찾았다. 도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손잡은 기업들이다. 샤오펑, 지커 등 중국 대표 전기차 업체 부스도 방문 리스트에 포함됐다. 지커는 한국 진출을 준비 중인 전기차의 강자다.

정 회장은 아우디, 도요타,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의 현지 전략도 살펴봤다. 아우디는 이번 모터쇼에서 아우디의 자존심인 4개의 링 로고를 뺀 중국 전용 전기차 브랜드 ‘AUDI’를 처음 선보였고, 도요타는 광저우자동차(광치)와 함께 만든 전기차 bZ7(현지명 보즈7)을 공개하는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마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 “베이징현대 다시 한번 기적을”

정 회장의 중국 모터쇼 방문은 2018년 베이징모터쇼 이후 7년 만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004년 기아 부사장 시절부터 중국 모터쇼를 거의 매년 찾았다. 현대차그룹은 2002년 중국 진출 이후 자동차 브랜드 최단기간(11년) 연간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하며 ‘현대 속도’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2016년 현대차그룹 글로벌 판매량(775만8000대)의 23%인 179만 대를 중국에서 팔았을 정도다.

그랬던 현대차·기아는 2017년 사드 사태와 중국 로컬 기업들의 성장에 밀려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중국 시장 판매량은 20만 대 수준(20만3012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현대차·기아는 중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상하이모터쇼에 불참했다. 그런데도 정 회장이 모터쇼를 찾은 건 중국 시장에서 부활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고위 경영층은 “어렵다는 이유로 주요 시장을 포기할 순 없다”며 중국 시장 재건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는 상하이모터쇼에 부스를 차리지 않았지만 직원 수백 명을 파견했으며 중소형 모터쇼를 공략하는 등 현지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현시점에 중국 재건에 나선 이유는 또 있다. 2023년부터 중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차 직접보조금 지급을 중단해 글로벌 업체들이 설 자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현지 합작사인 베이징자동차도 작년 말부터 베이징현대에 투자금을 늘리고 인력을 보강하며 다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저타오 베이징현대 신임 회장은 “베이징현대는 중국 시장에서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정은/양길성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