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규제 역시 비관세장벽의 한 형태다. 대내외 거시경제 여건이 악화하면서 각국이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ESG 규제를 무역 무기로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ESG 규제를 통상 규제로 인식하고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
[한경ESG] 이슈
대내외 거시경제 여건이 악화될수록 각국의 비관세장벽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는 미국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대표적 비관세장벽이다. 비관세장벽은 관세를 제외한 모든 무역 제한 조치를 의미한다. 산업 보조금을 문제 삼거나 통관 절차 및 위생 검역을 까다롭게 해 시간과 비용을 증가시키고, 각종 인증을 요구해 수출국과 생산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공급망 실사를 요구하거나, 폐기물·유해물질·온실가스배출량을 제한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역시 비관세장벽의 한 형태다. 최근 들어 ESG 규제를 기반으로 한 비관세장벽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각국이 이를 자국 및 자사에 유리한 무역 무기(武器)로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ESG 규제 중심의 비관세장벽 증가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시행한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이 최근 5년간 전자제품·의류·신발·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가장 높은 제재 비중을 기록했다. 해당 규제는 중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주요 생산국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2501건의 제재가 이루어졌으며, 이 중 81.6%가 자동차 및 항공우주 관련 산업에 집중돼 있어 실질적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제재 건수 중 32.9%(822건)는 최종적으로 통관이 거부되었고 61.3%(1532건)는 보류 상태로, 실질적 제재율이 94.1%에 달한다. 반면, 보류가 해제된 건수는 147건(5.9%)에 불과했다. 이는 ESG 규제가 무역장벽으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도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 산업, 완성차 및 배터리를 포함한 자동차 부품 산업, 그리고 공급망 리스크가 높은 의류 및 섬유 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유럽연합(EU)에서도 ESG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대표적 ESG 규제인 EU 산림전용방지법(EUDR)이 1년 연기 끝에 시행됐으며, 2026년부터 디지털제품여권제도(DPP), 2027년에는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시행이 예정돼 있다. 또 EU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공위성 기반 지구 관측 프로그램인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를 유럽의 이익 보호 수단으로 활용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위성을 활용해 EUDR을 유럽 시장에 대한 진입 규제로 활용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미국 역시 UFLPA 적용 과정에서 복수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SG 기술 기반 모니터링 체계가 확대될 경우 ESG 규제 중심의 비관세장벽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반(反)ESG 논란은 필연적
ESG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反)ESG 논란 같은 조정 과정이 필연적이다. 신제도주의 이론에 따르면 제도란 공동체 구성원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 체계이며, 조직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생존력을 높인다.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사멸하게 된다.
제도는 법률 같은 경성 규제와 규범·상식 등 비공식적 연성 규제로 나뉜다. ESG 평가가 대표적 연성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ESG 법제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연성 규제가 경성 규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특히 무역수지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 각국이 자국에 유리한 ESG 규제를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권 관련 법제도가 잘 정비된 선진국은 공급망 인권 실사를 제도화해 비관세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또 러·우전쟁 이후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된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강화해 자국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보호하고 있다. CBAM은 단순히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한 기업이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도록 무역장벽을 높이는 전략적 조치다.
무기화되는 ESG 규제
결국 ESG를 자국 및 자사에 유리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ESG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ESG는 연성 규제로 기업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졌지만,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며 ESG를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반(反)ESG는 연성 규제로 존재하던 ESG가 경성 규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경제적 유불리에 따라 발생하는 제도적 불일치성으로 인한 총성 없는 무역전쟁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기업은 각국의 규제 특성과 산업별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치밀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ESG 규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도화될 전망이다. 특히 ESG 규제가 가장 활발한 EU의 경우 2024년 10월 기준 약 74개의 ESG 관련 규제가 있다. 이 중 40개는 이미 실행 중이며, 20개는 EU 회원국 간 합의 완료, 14개는 논의 단계에 있다. 즉, 약 80%의 ESG 규제가 공식 채택되어 이행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한편에서는 ESG 간소화법 등 규제 완화 법안이 논의되면서 EU조차 ESG 규제 강화로 인한 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논란이 큰 ESG 규제를 조정하는 과정일 뿐, 궁극적으로 ESG 규제 제도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은 UFLPA와 분쟁광물법처럼 특정국을 겨냥한 ESG 규제를 강화하는 반면, 자국 제조업에 불리한 탄소 관련 규제는 완화하는 등 자국 이익 중심의 조정 작업이 활발하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할 때 2025년 이후 ESG 관련 통상 규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