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6일.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의 주제는 '프리뮤직’. 두 사람이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데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일본에서 왔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박창수와 치노 슈이치였다.
굉장히 오래 전의 일이지만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 피아노를 연주하는 제스처와 어법까지 거의 정반대라고 해도 될 두 연주자의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이것이 내가 경험한 첫 프리뮤직이었고, 예상치 못한 세계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즉흥연주라고 했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맺고 또다시 이어 나가기를 반복하던 음악. '내가 듣고 있는 이 음악의 정체는 뭘까'에 대한 물음이 내내 떠나지 않던 차, 강당 뒤편에서 세미나를 지켜보던 한 교수님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미리 짜고 하는 것 아닙니까?"
21년 뒤 예술의전당
2025년 2월 26일 예술의전당. 다시 두 대의 피아노 위에서 한국과 일본 두 연주자의 프리뮤직이 펼쳐졌다. 이번 예술의전당 공연은 2019년과 2023년에 이은 <박창수의 프리뮤직 –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의 세 번째 무대였다. 2023년 연주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엔 이곳에서 치노와 함께 연주하겠다고 선언했던 대로다.
박창수의 솔로 연주로 진행된 앞선 두 번의 공연은 피아노에서 튕겨 나가거나(2019), 안대를 쓰고 연주한(2023) 특이성이 있었다. 규정상 프리페어드 주법을 쓸 수 없어 그간 주요하게 사용해 온 많은 주법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려되는 점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발견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우연성에 의해 펼쳐진 2019년의 엔딩이나, 신체 일부의 감각까지 통제해 버린 2023년의 공연은 각각의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2년 만에 다시 찾은 예술의전당에서 이번에는 어떤 음악이 펼쳐지게 될까.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던 무대의 막이 열렸다.
[위] 엔딩 후 피아노 뒤로 떨어진 2019년 [아래] 안대를 쓰고 연주한 2023년 / 필자 제공 버드나무와 소나무
누가 어떤 피아노로 연주할지조차 미리 정하지 않은 채로 등장한 두 연주자는 무대로 걸어 나와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서야 각자의 피아노를 결정했다. 그리고 당초 예정했던 대로 80분의 연주를 진행해 나갔다. 적당한 시점에 자리를 맞바꿨던 것이 1, 2부를 가르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각각의 파트는 다시 여러 개의 작은 조각들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누군가 제시한 테마에 응답하거나 일부러 응답하지 않는 식의 대화로 채워졌다. 마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그렇지만 대화는 가능한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을 무대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프리페어드 주법이 제한된 채 88개의 건반만으로 음악을 이어 나가야 하는 상황은 확실히 두 연주자의 상반된 스타일을 부각시켰다. 음을 단단하게 채워 나가는 사람과 여러 개의 점을 뿌리는 사람. 그 두 갈래의 길은 서로 평행선을 긋기도, 교차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음악은 잔잔한 시냇가 같다가도, 곧 덮쳐 올 듯한 성난 파도 같기도 했다. 불협화음의 일렁임이 잦아들 무렵 미국 민요 ‘쉐난도어(Shenandoah)’에서 차용한 것 같은 멜로딕한 주제가 치노 슈이치에 의해 제시됐다. 박창수는 이 주제에 응답할까, 혹은 응답하지 않을까. 그런 묘한 긴장감이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였다. 공연이 끝난 후 이런 후기가 들려왔다.
"한 사람은 유연한 버드나무(치노 슈이치) 같고, 한 사람은 꼿꼿한 소나무(박창수) 같았어.".
창수와 치노
1964년생의 박창수와 1951년생의 치노 슈이치. 두 사람의 앙상블을 처음 듣던 21년 전 숙명여대 강당에서 나는 이들의 음악이 생소하고 신기하다는 인상 외에도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솔직히 밝혀야겠다. 그리고 이후로도 하우스콘서트에서 두 사람의 앙상블을 들을 때마다 달라서 다채롭다기보다는 전혀 서로가 호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는 것도.
이렇게 다른데 왜 치노와 함께 연주하시냐고 묻던 물음에 박창수 선생님은 '다르긴 하지'라는 말 외에는 이렇다 할 답을 한 번도 주지 않으셨다. 되려 서로가 더 젊었던 시절에 만나(1989년 ‘한일퍼포먼스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많이 싸웠고, 연락 나누고 살지 않다가도 또 만나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여담으로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눈빛 몇 번만으로도 백 마디의 말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13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늘 친구 같은 치노 슈이치와 박창수 두 연주자의 모습 / 필자 제공
나는 이번 무대를 통해 그간 호응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그 음악적 대화들이 이제서야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서로에게 응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박창수 선생님의 '다르긴 하지' 속에 숨은 답이었을까. 이번 연주는 그토록 '다른' 두 사람에게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각자의 시간이 응답한 것이라고, 두 사람이 만드는 앙상블은 한 번의 무대에서 다 보여지고 끝내는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다면 그것 역시 그다음을 위해 열어둔 결말일 것이다.
2004년의 그 세미나가 나를 하우스콘서트 스태프로 끌어들이고, 하우스콘서트의 수장이 되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듯 박창수와 치노 슈이치, 이들의 음악이 어디로 향할지는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 다음 챕터가 열릴 때까지는.
[2004년 숙명여대 세미나 현장. 실제 즉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려 나간 학생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