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더 폴'의 기분 좋은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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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문화부 차장
![[차장 칼럼] '더 폴'의 기분 좋은 역주행](http://img.toplightsale.com/photo/202503/07.38750146.1.jpg)
오늘 선택한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이다. 영화 좀 안다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작품. 수많은 평론가가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극찬한 그 영화.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호들갑인지….’ 고약한 심보가 호기심으로 치환돼 발길을 재촉했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다리가 부러져 입원한 스턴트맨이 팔이 부러져 입원한 소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영상화했다.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판타지 장르적 특성을 띤다.
대중이 호응한 장인정신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환상적인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줘야 함에도 흔하디흔한 컴퓨터그래픽(CG)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이 24개국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멋진 풍경을 4년에 걸쳐 영상에 담았다고 한다.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인도 찬드 바오리 우물, 히말라야 판공 호수 등의 장엄한 광경이 화폭에 담긴 명화처럼 스크린에 펼쳐진다. “캔버스를 욕망하는 스크린, 붓을 동경하는 카메라”라는 유명 평론가의 말 그대로였다.이 영화는 원래 2006년 만들어져 국내에 2008년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란 제목으로 처음 개봉했다. 당시 관객은 2만8000명에 불과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감독판으로 재개봉하며 입소문을 탔고,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17만 명을 넘었다. 제작한 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촌스럽다는 느낌을 단 1초도 받을 수 없는 건 CG 없이 장인정신으로 한땀 한땀 완성한 화면 덕택이리라. 가짜(CG)는 진짜(실사)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감독이 관객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영화가 주는 깊은 울림에 진정한 문화인으로 거듭난 것 같아 뿌듯했다. 70석 규모 관람석을 꽉 채운 이들이 나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는 걸 곁눈질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산업이 위기라는데, 적어도 이 공간에선 딴 세상 얘기 같았다.
OTT 탓만 할 건가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 장면이 오버랩됐다. 영화산업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영화인과 국회의원들이 합심해 마련한 자리였다. 영화계의 어려움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탓으로 돌리는 영화인들의 성난 목소리에 한 의원은 홀드백(극장 개봉 후 OTT 공개까지 걸리는 기간)을 강제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화답했다. ‘극장 위기=영화 위기’로 등치시키는 논리에도 뜨악했지만 콘텐츠 질 개선을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는 게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다.영화인은 좋은 예술 작품을 알아보는 대중이 줄어든 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보다 표값이 대여섯 배나 비싼 뮤지컬, 음악회, 발레 공연 등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이 몰린다. 문화생활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세대가 2030이라는 희망찬 통계도 있다. 시각과 청각을 만족시킬 작품이 걸리면 대중은 주저 없이 극장으로 향한다는 걸 ‘더 폴’이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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