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으로 가입자의 유심 정보 등이 유출된 SK텔레콤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정치권에선 약정 기간을 채우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는 가입자에게 위약금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28~29일 이틀 만에 7만 명이 다른 통신사로 빠져나가는 등 SK텔레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입자 이탈 속도 빨라져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번 해킹 사고가 ‘통신사 역사상 최악의 해킹 사고’ 아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늑장 신고했다는 지적에 “신고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인정했다.

가입자 보호와 관련해 유 대표는 “(나도) 유심안심보호서비스에만 가입했다”며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유심을 바꾸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민관합동조사단은 전날 단말기 고유식별번호(IMEI)는 유출되지 않아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면 유심 복제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피해 가능성과 무관하게 소비자 불안에 따른 여진이 지속되면서 SK텔레콤 이탈자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 29일 SK텔레콤 가입자 3만5902명이 KT와 LG유플러스로 번호이동을 했다. 두 통신사에서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한 가입자는 3262명으로 이날 하루 동안 3만2640명이 순감했다. 전날(2만5403명)보다 순감 규모가 늘었다.

알뜰폰으로 번호이동한 수치는 집계되지 않아 실제 이탈 규모는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SK텔레콤은 2월 말 기준 2309만 명을 보유한 부동의 1위 사업자다. 2위인 KT(1334만 명)와 격차가 상당하지만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치권 공방에 집단소송까지

대선 국면과 맞물려 이슈가 정치권 등으로 확산하는 것도 SK텔레콤에 악재다. 이날 청문회에선 번호이동의 ‘장벽’인 해지 위약금 납부를 면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SK텔레콤 이용약관 제44조가 이 같은 요구의 근거다. 약관엔 ‘회사 측 귀책 사유로 해지할 경우 위약금이 면제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사내에서 종합적인 검토를 거친 후 답하겠다”고 말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검토하고 사건 사후 처리와 병행해서 보겠다”고 덧붙였다. 일부 로펌은 SK텔레콤을 대상으로 위자료 지급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해킹의 원인을 얼마나 밝힐 수 있느냐에 SK텔레콤의 명운이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날 SK텔레콤 유심 정보 해킹 사건 내사를 수사로 전환했다. 22명 규모 전담수사팀도 꾸렸다. 국내외 공조 체계를 가동해 악성코드 침입 등 해킹 경위와 배후를 밝혀낼 계획이다. 과기정통부가 주축인 민관합동조사단도 조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시스템 미비 등 SK텔레콤의 귀책 사유가 명확해지면 재무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상 교체를 위해 6월 말까지 유심 1100만 개를 확보하기로 하는 등 수백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데다 과징금도 역대급으로 맞을 가능성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과징금 기준이 ‘관련 매출 3%’에서 ‘전체 매출 3%’로 바뀌어서다. 게다가 SK텔레콤은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해킹 피해가 발생하면 회사가 전면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 대표는 청문회에서 “최악의 경우 SK텔레콤 망을 쓰는 알뜰폰 가입자를 포함해 250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최지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