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가 글로벌 무역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각국의 탄소세 도입은 산업 경쟁력과 무역 환경을 뒤흔들며 국제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보호무역주의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① 탄소세, 무역 전쟁의 뇌관 되나
공장 굴뚝에서 대기 중으로 온실가스가 방출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탄소세(carbon tax)가 무역 전쟁의 뇌관이 되고 있다. 관세화된 탄소세가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12월 31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 기간을 종료하고 2026년 1월부터 역외 국가에 간접적으로 탄소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다만 속도 조절 가능성은 열려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CBAM에 따른 탄소세 부과를 1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EU에 대응해 청정경쟁법과 외국오염관세법(FPFA) 등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여타 국가도 각국의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탄소세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5년 2월 13일 기준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 또는 지역은 39곳이며, 배출권거래제(ETS)를 시행하는 국가 또는 지역은 한국을 포함해 36곳이다. 유럽은 각 경제권의 배출권거래제를 활용해 탄소세를 산정한다. 이에 따라 여타 국가도 시장가격(배출권거래제)이나 탄소집약도를 기준으로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중 CBAM은 수입업자에게 탄소세 납부 의무를 부여한다. 사실상 수입 관세와 유사한 구조다. 이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무역 대상국의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FPFA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해 캐서린 볼프람 MIT 교수는 “EU의 CBAM은 미국을 포함한 각국이 자체적으로 탄소가격을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이어 미국 탄소세 도입 가능성 높아
미국 정부도 탄소세 도입에 적극적이다. 민주당은 탄소세에 해당하는 청정경쟁법을, 공화당은 FPFA를 각각 발의한 바 있다. 주정부 차원에서도 ETS를 먼저 도입하며 탄소세에 대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워싱턴주 등이 자체적으로 ETS를 운영 중이다. 이제훈 한국경제인협회 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서도 연방 차원의 탄소세 도입 필요성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확보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청정 산업 육성 정책의 한계도 미국의 탄소세 도입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제임스 스톡 하버드대 교수는 “IRA에 탄소세를 추가하면 2035년까지 탄소배출량을 66%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학자들은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으면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기후변화를 주류 경제학으로 끌어들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석좌교수도 탄소세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최적의 정책 수단으로 제시했다. 그는 각국 탄소세 도입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공로로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5년 논문에서는 유사 경제권 내 국가들이 탄소감축 목표를 공유하며 협력하는 ‘기후 클럽’ 개념을 제시했고, 해당 클럽의 운영 방식으로 탄소세를 강조했다.
중국·인도·브라질, 탄소세 움직임에 반발
관세 성격을 띠는 탄소세는 이제 개별 국가의 환경 정책을 넘어 글로벌 무역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탄소감축을 선도하는 국가들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품에도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거나 추진해 무역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의장을 맡은 BASIC 국가 그룹(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국)은 CBAM을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간주하며 COP29 기후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2024년 10월 말 러시아에서 열린 지도자 회담 이후, 이들은 CBAM을 “일방적이고 징벌적이며 차별적인 보호주의적 조치”라고 규정했다.
일부 국가는 이보다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자이 세트 인도 재무부 경제 담당 차관은 “CBAM은 인도 국내 시장 비용을 고려할 때 불공정하고 유해하다”고 주장했다. CBAM이 도입되면 인도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20~35%의 탄소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탄소세를 매개로 주요 강대국이 생산 거점을 자국으로 옮기거나 시장을 개방하려 한다”며 “탄소세는 패권 경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집약도·공급망 관리… 전략 선회도 필요
글로벌 탄소세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고탄소 산업에 속하거나 탄소 집약도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경영 전략을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세가 기업의 생산 비용과 수출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훈 교수는 “탄소세는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며, 기업의 주력 제품 생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탄소세 도입이 고탄소 배출 산업의 빠른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집약도 관리에도 집중해야 한다. EU CBAM은 제품 단위 배출량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원산지의 평균 배출 원단위 또는 배출 효율이 낮은 EU 사업장의 평균 배출 원단위를 적용해 탄소세를 산정한다. 미국의 FPFA는 원산지의 데이터 신뢰도가 낮을 경우 원산지의 탄소집약도를 추가로 가산 적용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훈 책임은 “한국은 신뢰성 있는 탄소집약도 정보를 공시하고, 이를 낮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세는 기업의 공급망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윤남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탄소세 부과의 기초가 되는 공급망 내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해야 정확히 배출량을 산정하고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명확한 법적 의무가 존재하고 납부가 불가피한 탄소세를 충당부채로 분류하고 있다. 늦장 대응하는 기업은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 기반 기후 싱크탱크 샌드백(Sandbag)과 E3G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CBAM 인증서 부담액은 2026년 약 9000만 유로(약 1349억 원)에서 2035년 약 3억4000만 유로(약 5096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훈 교수는 “탄소세가 국제적으로 자리 잡으면 탄소감축이 곧 비용 절감이자 경쟁력 확보 수단이 될 것”이라며 “탄소세는 환경규제를 넘어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