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는 ESG 경영위원회를 통해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경영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기업이 ESG 경영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민관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5월에 출범하는 3기 위원회를 준비 중이다.
[한경ESG] 기업, 지속가능경영을 말하다 ① 한국경영자총협회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뒤 다자주의 무역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속가능경영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경기 악화로 인한 저성장 기조와 수익률 감소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속가능경영은 리스크와 기회 측면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과제다.
지난 2021년부터 주요 경제 단체는 내부에 ESG 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업을 돕기 위해 ESG포럼과 얼라이언스를 출범하고 있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의 활동을 알리고 국회, 정부에서 만들어지는 법령이나 정책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총 역시 ESG 경영위원회를 통해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경영의 방향성을 고민 중이다.
기업주도 ESG 자율경영 옹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국내 대표적 사용자 단체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사용자 대표로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참여해 주로 임금과 노동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경총은 최근 기업 경영 전반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형태로 활동 범위를 대폭 넓혔다. 2018년 손경식 CJ그룹 회장 취임 이후 정관을 변경하고 종합 경제 단체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기업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업무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경총은 ESG 경영이 사회적 어젠다로 부상한 지난 2021년 11월 ESG 경영위원회를 설립하고 손경식 회장 이하 18개 주요 그룹 사장단 대표로 위원을 위촉했다. 경영위 산하에는 ESG 부서장들이 실무위원으로 참여한 실무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발표한 ‘1차 ESG 자율경영 실천을 위한 공동선언’ 선언문에는 기업 주도 ESG 자율경영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공유하고, 관련 이슈의 정기적 점검과 개선을 통해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신뢰받는 경영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경총,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가 공동으로 국내 경제 단체 최초 통합 ESG 경영 매뉴얼인 ‘ESG 스타트 매뉴얼’을 발간해 회원사에 배포하기도 했다. 지난해 나온 ‘2차 ESG 자율경영 실천을 위한 공동선언’에서는 기업 주도 ESG 자율경영 고도화가 화두로 담겼다.
경총은 2021년 6월부터 매 분기 ESG 경영위원회 활동과 참여 기업의 ESG 경영 추진 현황 등을 담은 ‘ESG 경영위원회 회보’를 발간하고 있으며, 매월 초 ‘월간 ESG 동향’을 펴내 국내외 ESG 정책과 관련한 정책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회원사뿐 아니라 일반 기업도 볼 수 있도록 오픈돼 있다. 오는 5월 19일에는 새로운 3기 ESG 경영위원회가 출범하는 만큼 새로운 목표와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손경식 회장이 경총 ESG경영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경총
(왼쪽부터) 경총 손석호 사회정책팀장, 김진현 사회정책팀 선임위원, 임영태 고용·사회정책본부장, 허정호 청년ESG팀
책임위원, 황호성 청년ESG팀 사원, 최문석 청년ESG팀장. 사진=김기남 기자
경총은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 멤버로서 수탁자 책임활동을 직간접적으로 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하는 4차 민간 합동 ESG 정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 단체 중에서는 경총과 함께 대한상의와 중소기업중앙회가 함께한다. 공급망실사 등 기업의 주요 관심사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무역협회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공동으로 ‘EU 공급망 실사지침 대응 릴레이 설명회’를 개최했다. 실사 주체인 대기업을 대상으로 중소·중견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한 협력 체계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해 경총은 크고 작은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작년 9월에는 ‘합리적 지속가능 공시를 위한 경제계 세미나’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는 현 지속가능 공시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와 보완점을 짚었다. 도출되는 정보의 불완전성 때문에 정보가 비교 가능하지 않고, 기업 스스로 신뢰할 수도 없으며, 투자자에게도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철우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상장회사 및 배출량 검증 전문가의 의견 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방법론 측면에서 통일되지 않은 공시기준이 대응하기 어려워 자체 활용보다 외부 컨설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기업이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공시하게 되는 위험을 낳는다며 비판 의견을 냈다.
사회 정책 및 기업 환경 조성에 목소리
경총이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젠다는 2차 공동선언문에 담긴 ‘기업 주도 ESG 자율경영 고도화’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ESG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관리시스템 구축, 기후 금융, 탄소시장 구축 등 기후 대응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가 지원 과제를 발굴하고 제시하고자 한다. 점차 전력믹스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탄소에너지 캠페인 CF100을 확산시키고, 전력망을 확충하며, 개발사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재생에너지 직접구매계약(PPA) 거래 편의 개선 등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 실현도 가속화한다.
합리적 지속가능성 공시 체계 완성과 공급망 스케일업도 중요한 과제다. 보고기업의 공시 역량을 제고하면서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지속가능성 공시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공급망의 경우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 따른 ESG 공급망을 고려해 대기업 협력사 지원 확대와 세제 지원을 확대 건의하고자 한다. 저출생 극복 방안 마련과 청년 고용 지원도 경총에서 공들이는 중장기 과제다.
상법 개정안이나 연금 개혁안 등 국회 법안이나 정부 정책에도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총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이 개정안은 지배구조 개선,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상법 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다. 상법에서 포괄적 규정으로 모든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대기업뿐 아니라 소송 대응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영활동 전반에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에 정부가 동 상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서는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고 평가하면서도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만을 연금개혁 완수로 보기는 어렵다며 공적연금의 또 다른 축인 기초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까지 중층적 연금 체계를 합리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개혁 논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실제 청년 고용에 대한 구체적 실천 사항으로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청년 고용을 위한 ‘청년 도약 프로젝트’를 2021년부터 지속해왔다. 경총이 우수한 청년 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을 발굴해 참여자 모집, 프로그램 운영, 홍보 등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청년 친화적 ESG 활동을 확산하기 위한 청년 도약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멤버십을 운영한다. 멤버십에 속한 기업들이 홍보가 필요하거나 포상 등이 필요할 경우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더 많이 운영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ESG, 규제에 초점 맞추기보다 글로벌 경쟁 룰 만들어줘야"
[인터뷰] 손석호 경총 사회정책팀장
- ESG 경영위원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2기 경영위원회의 실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2기 위원회를 겪으며 ESG 경영을 고도화하고 있는데, 오는 5월에 출범하는 3기 위원회를 어떻게 꾸릴지 고민 중이다. 기업의 활동도 알리고 국회나 정부에서 나오는 법, 정책을 현실과 잘 맞도록 고민하고 있다. 안으로는 내부 역량을 높여나가야 하고, 밖으로는 기업이 ESG 경영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기업에서는 ESG 경영을 어떻게 하고자 하나.
“기업은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없애고 ESG 경영을 좀 더 활성화하는 방향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원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도 있다. 넷제로는 기업 혼자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대응 인프라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업들은 어차피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어 글로벌 트렌드를 맞추어 가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룰이 없는 것에는, 예를 들어 플라스틱의 경우 일정한 룰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업경영 활동에 급격한 변화와 비용을 수반하게 하는 법이나 규제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 한국형 ESG 공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기준서 2개를 내놓은 뒤 각국이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처한 독특한 산업적 특성을 살펴야 한다고 본다. 제조업 중심이고 복잡한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기존에 지속가능 공시를 도입한 역사가 짧아 미국과 유럽에 비해 역량 차이가 큰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있다. 지속가능 공시에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데, 국내 상황에 맞는 지속가능 공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주요국 공시 기준을 보고 참조하도록 여러 관계기관에 건의하고 있다.”
- 지난해 9월에 공시 관련 경제계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스코프 3와 제101호 2가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제조업은 B2B 공급망이 복잡할 수밖에 없고, 대·중·소기업 간 역량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급망에서 배출량값을 보내준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스코프3 온실가스배출량의 경우 연료 기반으로 할 것인지, 거리 기반으로 할 것인지 통일하지 않아 혼란스럽다. 세이프 면책 조항도 있어야 한다. 101호 같은 경우 고용부·환경부·인권위 등 정부기관에서 의견을 수렴해 올린 것인데, 법정 공시제도로 들어오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기업이 느끼는 부담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속가능성 개념을 경영과 큰 관련이 없는 것까지 과도하게 확장하게 되면 너무 과중하다. 부처마다 기업 관련 정보공개 제도를 운영하는데, 지속가능경영과 연관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 이 외에도 기업이 관심을 갖는 주제는 무엇인가.
“공급망 실사도 기업이 많은 관심을 갖는 주제 중 하나다. 통상교섭본부, 무역협회처럼 ‘EU 공급망실사 대응 릴레이 설명회’를 했는데 지난해 50여개 기업이 참석했다. 경총의 80%가 중소중견기업인데, 공급망에서 필요한 데이터 요청이 들어온다. 산업부에서 만드는 데이터 플랫폼을 얼른 만들고 상호 인증 기관의 인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공급망 실사 의무화 법안은 2027 회계연도이기에 조금 여유가 있지만, 현안 위주로 기업이 어떻게 대비하는지 스터디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내부 역량을 높이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핫한 이슈로 우선순위에 있다. 스코프 1·2를 보고하는데 배출량값 몇 톤을 하는 게 아니라 원료, 기술, 설비, 사이즈를 써야 하므로 기술 유출 우려도 있다.”
-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많은 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다자주의 무역 흐름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상반기에는 미국 정부가 취하게 될 정책을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어 수익률이 떨어지고 비용 부담이 크면 기업이 ESG 경영을 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기에 투자를 멈출 수는 없다. 정부가 기술투자 세액 지원을 확대하고, 공시도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데 기술 지원을 해주고, 인증 및 검증(MRV)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후 금융 활성화도 필요하다. 규제를 만들 때도 외국만을 따라 할 게 아니라 우리 실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ESG 이슈가 무역과 관련한 통상의 문제로 변화해 가는 부분이 있다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에너지를 예로 들면, 에너지 통상은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다. 에너지 문제는 조달 원가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조달 원가를 낮추는 문제와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에너지 문제가 굉장히 커질 것 같다. 에너지 전환을 했을 때는 전환 비용뿐 아니라 다음에 그걸 유지하는 비용까지 고려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전환을 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미국의 스탠스가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 앞으로 경총 3기 ESG 경영위원회는 어떻게 꾸려갈 예정인가.
“기업들이 ESG 경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책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내부 역량을 높이는 데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이 트럼프 2기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앞으로 2년간은 세계적으로 ESG 규제의 변동성이 심화될 것이며, 점차 꼭 필요한 것만 자리를 잡아나갈 것으로 본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선도 기업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 적응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제도라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할지 꾸준히 정책 대화를 거쳐 민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